부동산 PF 위기·주택 침체 속 ‘데이터센터’가 구원투수 등판
단순 시공 넘어 부지 선정·운영까지…‘디벨로퍼’로 수익 극대화
GS·삼성·현대 등 대형사 각축전…“전력 수급·민원 해결이 관건”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더 이상 아파트만 지어서는 생존할 수 없다.”
고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주택 시장에 한파가 몰아치자,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데이터센터’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데이터 처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유통하는 데이터센터가 건설업계의 새로운 ‘금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사들은 단순히 건물을 지어주는 시공사(Contractor) 역할을 넘어, 부지 선정부터 자금 조달, 운영까지 도맡는 ‘디벨로퍼(Developer)’로 변신하며 수익성 극대화에 나서고 있다.
◇ ‘디지털 시대의 쌀창고’, 건설사의 미래가 되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장비 등을 갖추고 기업의 방대한 데이터를 24시간 관리하는 시설이다. 과거에는 IT 기업이나 통신사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데이터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상황이 바뀌었다. ‘서버 호텔’로 불리는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이 빚어지자, 시공 능력을 갖춘 건설사들이 직접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건설사 입장에서 데이터센터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주택 사업은 미분양 리스크와 정부 규제에 민감한 반면, 데이터센터는 기업(B2B)을 대상으로 장기 임대 계약을 맺기 때문에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오피스나 상업 시설보다 임대료가 높고, 경기 변동의 영향을 덜 받는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힌다.
◇ “짓기만 하던 시대는 끝”…운영까지 하는 ‘디벨로퍼’ 경쟁

가장 적극적인 곳은 GS건설이다. GS건설은 단순 시공을 넘어 개발과 운영 사업에 선제적으로 진출했다. 자회사 ‘디씨브릿지’를 설립해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을 확보했으며, 안양 데이터센터를 시작으로 고양 삼송 등 수도권 인근에 자체 데이터센터를 개발 중이다. 이는 시공 마진만 남기는 도급 사업의 한계를 벗어나, 시설 운영 수익까지 챙기겠다는 전략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그룹 계열사의 시공 경험과 기술력을 앞세웠다.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냉각 시스템’ 기술을 고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 수주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냉각기술 전문기업과 협업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차세대 냉각 기술 개발에도 착수했다.
현대건설 역시 부동산 투자회사와 손잡고 데이터센터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용인 죽전 데이터센터 시공을 맡은 데 이어, 리츠(REITs) 자산관리회사인 ‘AMC’를 설립해 데이터센터 투자 개발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건설사가 직접 지분을 투자해 개발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다.
◇ ‘전력·민원’이 변수…진입 장벽 높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센터 사업의 성패는 ‘전력 수급’과 ‘주민 수용성’에 달려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수도권 전력망이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전자파와 열섬 현상을 우려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님비 현상)도 넘어야 할 산이다. 실제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 반대로 데이터센터 건립이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는 일반 건축물보다 훨씬 고도화된 설계와 시공 능력이 요구되는 첨단 시설”이라며 “단순히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전력 효율 관리, 서버 안정성 확보 등 운영 노하우를 얼마나 갖췄느냐가 향후 건설사들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택 시장의 빙하기를 뚫고 데이터센터라는 신대륙을 개척하려는 건설사들의 치열한 ‘디지털 영토 전쟁’이 시작됐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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