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아침 출근길부터 잠들기 전 잠깐의 순간까지. 일상에 스며드는 몇 초의 시간이 이제 또 다른 ‘시청 순간’이 됐다. 그 사이를 ‘숏폼 드라마’가 파고들었다. 길게 몰입할 여유가 없어도 된다. 몇 컷만으로 감정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시청 습관이 형성됐다.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어느새 하나의 문화다.

대표적인 작품은 쟈니브로스의 ‘해야만 하는 쉐어하우스’다. 드라마박스 글로벌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세로형 드라마 시장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디오리진의 ‘잔혹한 나의 악마’는 올초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숏폼 드라마 플랫폼 ‘드라마박스’ 내 북미 인기 순위 3위에 올랐다.

‘나인투식스’ 역시 직장인의 반복된 하루를 타임루프 설정으로 버무려 플랫폼 ‘비글루’ 실시간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귀신도 세탁이 되나요?’ 같은 실험적 장르는 국내뿐 아니라 동남아·중화권 플랫폼에서 관심을 모았다.

‘연하 재벌남의 첫사랑은 하우스키퍼’처럼 현지에서 먼저 반응을 일으킨 작품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 숏폼은 이제 해외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빈도가 꾸준해졌다.

한 제작 관계자는 “숏폼 드라마의 장점은 분명하다. 회당 1~3분의 속도감, 세로형 화면의 친숙함, 스마트폰 기반 소비에 최적화된 포맷, 낮은 제작비 등이 맞물리며 진입장벽을 최대한 낮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인 배우들에게는 기회를 주고, 제작사에게는 리스크를 줄이며, 시청자에게는 빠른 도파민 자극을 제공한다”며 “SNS 기반 바이럴도 빠르게 일어나 제작 직후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숏폼의 가장 큰 힘”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자 OTT도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티빙은 ‘티빙 숏 오리지널’을 론칭하며 자체 숏폼 라인업을 키우고 있다. 넷플릭스 역시 실험적 세로형 콘텐츠 개발을 준비 중이다.

MBC는 ‘심야괴담회’ 파생 숏폼을 일본 플랫폼에 먼저 공개했다. 티빙은 ‘티빙 숏 오리지널’을 론칭, ‘이웃집 킬러’ ‘나는 최애를 고르는 중입니다’ ‘나, 나 그리고 나’ 등을 제작했다. 방송사·OTT·제작사가 모두 숏폼 생태계를 하나의 새 시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숏폼 드라마는 지금의 콘텐츠 시장 흐름이 가장 민감하게 반영되는 실험 무대다. 누구나 만들고, 누구나 소비할 수 있지만,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지는 않다.

약점도 명확하다. 짧은 분량으로 승부하는 만큼 스토리 깊이가 얕아지기 쉽다. 과도한 자극성·막장 설정에 기대는 작품이 반복되면 시장 전체의 피로도도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

플랫폼 다변화도 문제다. 채널 인지도가 고르게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스태프·배우들의 촬영 환경이 불안정해지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빠른 제작·저비용 구조가 장점인 동시에 구조적 취약성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한 제작 관계자는 “숏폼 드라마는 단순히 ‘짧게 만든 드라마’가 아니라, 플랫폼 환경에 맞춘 새로운 스토리 전략”이라며 “압축과 리듬이 핵심이기 때문에 기존 드라마 문법을 축소해 그대로 넣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OTT의 참여는 질적 성장의 신호지만, 결국 승부는 서사의 혁신에 달려 있다”며 “짧더라도 납득할 만한 감정선을 구축하는 작품이 시장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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