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 캐릭터들까지 모두 살아 숨 쉬는 듯한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 이루어질지니’ 역시 ‘램프의 정령’ 지니와 ‘감정 결여’ 인간 가영이라는 독특한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조연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 지니: 천의 얼굴을 지닌, 가장 인간적인 ‘신(神)’

지니(김우빈 분)는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편리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천 년간 인간의 온갖 추악한 욕망과 순수한 소망을 지켜보며 감정을 학습한, 가장 인간에 가까운 신(神)이다. 허세와 능청스러움으로 자신을 포장하면서도, 그 안에는 깊은 연민과 고독을 품고 있는 입체적 캐릭터로 탄생했다.

김은숙 작가가 “배우의 모든 감정과 표정을 다 써야 하는 캐릭터”라고 평했듯, 김우빈은 코미디와 정극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지니의 변화무쌍함을 완벽히 구현했다. 감정이 메마른 가영 앞에서는 안달이 난 아이처럼 굴다가도, 그녀의 작은 진심에 온 우주가 흔들리는 듯한 섬세한 눈빛 연기로 ‘감정 과잉’이라는 설정에 절대적인 설득력을 부여했다. 그는 가영의 ‘주인’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구도자다.

◇ 가영(수지 분): 무표정 속에 가장 뜨거운 인간성을 감춘 ‘얼음공주’

가영(수지 분)은 언뜻 감정이 없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뜨거운 인간애와 선한 의지를 스스로 봉인한 인물이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감정은 사치라 여기며 살아온 그녀의 ‘감정 결여’는, 역설적으로 천 년간 인간의 욕망에 질려버린 지니에게 가장 신선하고 순수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극 초반,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캐릭터 설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연기가 어색하다’ ‘로봇 같다’는 등 일부 시청자들의 엇갈린 평가에 직면했다. 감정을 극도로 절제한 연기 톤이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킨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이야기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러한 평가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얼굴에 미세한 근육의 떨림이나 찰나의 눈빛 변화를 주는 ‘디테일 연기’에서 빛을 발했다. 고려 시대로 돌아간 시절 수지의 환한 얼굴은 가영의 차가움과 확연히 대비되며, 서사와 캐릭터 모두 설득력을 부여했다.

캐릭터의 어색함은 극이 진행되면서 연기력으로 충분히 커버했다. 자칫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쌍방 구원 서사’에 현실성과 깊이를 더했다. 가영은 사이코패스에 로코를 더한 ‘어려운 캐릭터’다. 이 과제를 수지가 성공적으로 풀어냈다.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 수현(노상현 분): 차가운 카리스마로 빚어낸, 매혹적인 안티 히어로

노상현은 ‘죽음의 천사’ 수현 역을 통해 서늘하고도 매혹적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초월한 듯한 차가운 눈빛과 절제된 표정, 그리고 낮게 깔리는 목소리 톤으로 초월적 존재의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김우빈이 연기한 ‘지니’가 뜨거운 에너지로 극을 이끈다면, 노상현은 그와 정반대의 차가운 카리스마로 팽팽한 균형을 맞추며 극의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특히 ‘절제미’에서 빛을 발했다. 지니를 향한 오랜 적개심이나 가영을 향해 스며드는 미묘한 감정의 파동을 과장된 연기 없이 연기했다. 오직 눈빛의 미세한 흔들림이나 찰나의 침묵으로 표현해냈다. 덕분에 수현은 단순히 주인공을 방해하는 평면적인 악역을 넘어섰다. 자신만의 서사와 신념을 지닌 입체적인 안티히어로로 완성될 수 있었다. 노상현은 이번 작품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에 선 인물을 소화해내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 미주(안은진 분): 판타지에 현실을 붙이는, 가장 따뜻한 ‘닻’

‘믿고 보는 배우’ 안은진은 미주를 통해 다시 한번 그 이름값을 증명해냈다. 특유의 생생한 생활 연기와 찰진 대사 소화력이 극중에서 돋보였다. 자칫 비현실적으로만 흐를 수 있는 판타지 극에 가장 확실한 ‘현실의 닻’을 내렸다. 어색할 수 있는 경상도 사투리도, 할머니를 연기한 것 역시 안은진이 했기에 사랑스러운 인물로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안은진의 가장 큰 장점은 극의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환기시키는 능력이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천연덕스럽게 코믹한 대사를 던지며 긴장을 풀어주는 탁월한 완급 조절 능력을 가졌다. 감정이 메마른 가영 옆에서 보여준 러블리하고 따뜻한 케미스트리를 더해주면서 극의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안은진은 미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웃음과 공감, 따뜻한 위로까지 선사하며 드라마의 ‘신스틸러’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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