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거장’ 박찬욱 감독의 이름값이 무겁다. 흥행 부담까지 가중됐다. 19년을 준비한 만큼 부담감도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이다.

박찬욱 감독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리뷰를 안 보고 있다.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 상처받기 싫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헤어질 결심’(2022) 이후 3년 만에 박찬욱 감독이 선보인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재취업을 위해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작가의 1997년 발매된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다.

박 감독은 ‘액스’를 접하고 2006년부터 영화화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의 ‘거장 감독’ 타이틀이 붙기까지 박 감독 역시 숱한 실패의 역사를 거쳤기에 만수가 느끼는 고용불안을 절감했다.

박 감독은 “저도 짧게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 늘 잠재적인 고용불안에 대한 공포가 있다. 저뿐만 아니라 이병헌, 손예진 등도 모이면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원작을 읽을 때 남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한다고 부른다면서요. 한국에서는 뭐라 하는지 아세요? 너 모가지야.”(‘어쩔수가없다’ 속 만수 대사)

초반 작업 당시엔 원작 ‘액스(Ax, 도끼)’와 마찬가지로 실업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며 원제를 ‘모가지’로 구상했다. 누구보다 만수의 상황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제목이다.

“부르기 쉽고 잘 기억되는 제목이잖아요. 그래서 ‘모가지’로 하고 싶었죠. 근데 한국 영화사에선 쓸 수 없는 제목이었어요. 주변에서 기겁하면서 말리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의 ‘어쩔수가없다’가 됐다. 띄어쓰기도 생략한 독특한 제목이다. 박 감독은 “감탄사처럼 한 단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각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냥 튀어나오는 것”이라며 “버릇처럼 말하는 감탄사나 변명의 뉘앙스를 꾸미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음 작업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제지업에 매달려온 만수가 살인을 감행할 정도의 절실함이 필요했다. 박 감독은 그런 만수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평생을 영화에 매달려 온 자신을 겹쳐본 것이다.

박 감독은 “제가 젊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은 당장 안정돼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라며 “만수가 남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흥행을 잘 못하는 영화를 연달아 두, 세 편 했는데, 그럼 실업자로 돌아가게 되겠죠, 뭐”라고 쿨하게 반응했다.

‘어쩔수가없다’가 공개된 후 일각에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기생충’이 사회계급 간 빈부격차를 다뤘다면, ‘어쩔수가없다’ 역시 고용불안에 대한 생존극을 담았다. 두 작품의 교집합은 ‘블랙 코미디’로 통한다.

이런 반응에 대해 박 감독은 “‘기생충’은 계급 간의 전쟁이다. 반면 제 작품은 중산층 계급 안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싸움이다. 뭔가를 얻기 위한 것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아주 속물적인 이야기”라며 “불쌍하기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크게 보면 계급 문제에 착안하고 있고, 넓게 보면 블랙 코미디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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