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데블스 플랜2’는 심리전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게임을 통해 최후의 1인을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이 일주일 이상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한다. 이 게임은 룰보다는 공간이 감정과 전략을 움직이게 만든다. 스포츠서울은 제작진이 설계한 공간 구조가 플레이어의 심리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트장을 직접 찾았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경기도 파주 외곽, 산과 들이 겹겹이 포개진 끝. 비포장 흙길과 좁은 아스팔트가 교차하던 길목에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 데스룸’의 세트장이 있다.

입구는 의외로 밋밋했다. 철제 게이트 하나. 발을 들이자 회색빛 콘크리트 담장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속에서 거대한 건물이 몸체를 드러냈다.

내부에 들어서자 공기가 변했다. 천장은 높다. 벽은 차갑다. 숨이 짧아지고 발소리는 길게 울리는 것 같다. 조명이 닿지 않는 복도는 어둠에 잠식돼 있다. 위압감에 세트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첫 공간은 1층 생활동. 거실에는 따뜻한 톤의 조명이 켜져 있다. 나무 식탁 위엔 작은 화분이 놓여 있다. 부엌은 가지런하다. 의자는 부드럽다. 펜션 같은 느낌이다.

2층은 섬세하다. 2인실과 3인실을 번갈아 배치했다. 인터뷰룸과 드레스룸까지 정갈하다. 가장 흥미로운 건 ‘붙박이장’이다. 고정 수납장이 아니라 통째로 바뀌는 모듈형 가구다. 정종연 PD는 “플레이어가 외출하거나 감옥동에 갈 경우 방 전체를 리셋한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정체성도 함께 바뀐다는 뜻이다. 침대는 같아도 주인은 다르다. 같은 방인데도 감정이 매번 새로워진다. 전에 본 적 없는 색다른 구성이다.

생활동과 감옥동 사이 동떨어진 건물 하나가 더 있다. ‘게임동’이다. 버려진 수도원 같다. 오래된 회색 벽, 녹슨 창살, 음침한 외관까지. 내부는 더 강렬하다. 높은 천장, 양쪽 복도로 이어진 무거운 철문들. 그 끝에 각각 다른 ‘게임방’이 있다.

마치 감정의 실험실로 느껴진다. 금속으로 만든 테이블에 앉은 가수 규현과 아나운서 강지영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공간이 만드는 이질감에 단 한 마디도 허투루 나눌 수 없어서다.

규현이 말을 건네고, 강지영이 의도를 해석하려는 순간마다 묵음의 긴장이 켜진다. 웃는 얼굴조차 믿기 어려운 상황. 말보다 눈빛과 망설임이 먼저 작동한다. 이처럼 게임동은 회의실, 식당, 작업실 등의 탈을 썼지만 본질은 심리전 장치다.

정 PD는 “중세 느낌이지만, 고증보다 낯섦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비현실을 연출한 무대다. 낯섦은 사람의 감각을 뒤흔들기 마련이다.

감옥동은 좁은 출입구, 눌린 천장, 음울한 회색 벽으로 압도감을 준다. 빛은 사라지고 소리는 먹먹하다. 7개의 침상과 남녀 분리 샤워실이 전부다. 명백히 ‘심리적 수감’을 위한 공간이다. 감옥동의 고립은 오해와 추측, 불신을 증폭시키는 장치다. 실제 방송에서는 이 감정이 쌓여 게임의 연료가 된다.

저스틴 H.민은 탈락자 선정 게임에서 손은유와 김하린과 연대를 기대했다. 하지만 생활동에서의 거래, 타협, 침묵이 반복되며 연대희망은 균열을 일으켰다. 결국 감옥동은 연대와 배신 사이에서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크게 요동치는 지점이 됐다.

세트장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엔 반구형으로 만든 공간이 있다. 이름은 ‘데스룸’. 거울로 둘러싸인 이 곳은 이글루 같기도, 고해성사실 같기도 하다. 여기선 경기의 승패보다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거울은 감시 목적이고, 심리전이다. 정 PD는 “이곳에서 지면, 진짜 탈락”이라며 말을 아꼈다.

생활동의 온기, 감옥동의 단절, 게임동의 긴장은 서서히 감정을 조이고, 끝내 선택을 강요한다. 협력도, 배신도, 침묵도 모두 특별한 공간 속에서 파생되는 결과다.

세트장을 걸어 나오며 확신한 게 하나 있다. 이곳에선 누구나 몰입하고 진심을 꺼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간이 가진 모든 요소가 인간의 감정을 건드려서다. 무의식이 결국 분출될 수밖에 없다.

생활동의 안락함, 감옥동의 단절, 게임동의 긴장이 대비된다.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노출한다. 선택에 진심을 담게 된다. 그 감정은 가공되지 않은 채 화면에 남는다. 시청자는 그 진폭에 반응하게 된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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