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수원=황혜정 기자] “시즌을 일찍 시작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KBO리그 10개 구단 불펜진이 시즌 초반부터 고난의 행군 중이다. 불펜진 평균자책점(ERA)는 2일 현재 5.36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점 이상 높다. 지난해는 4.14, 2022시즌에는 4.34였다.

특히 5개 구단의 불펜진 ERA가 5점대가 넘어간다. KIA만 유일하게 2.84로 2점대다. KT는 최하위인 ERA 8.17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KT가 불펜 ERA 4.07로 리그 4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부진이다.

‘투수왕국’ 수장으로 불리는 KT 이강철 감독은 “핑계일수 있지만, 시즌을 일찍 시작한 게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한다”고 짚었다. 이 감독은 “시범경기도 10경기밖에 안했다. 불펜 투수들은 두세 차례 등판하는 데 그쳐 중 2~3경기만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14경기로 잡혀있던 시범경기 수가 10경기로 줄었다. 시범경기는 선발진의 투구수 증가가 첫 번째 포인트다. 자연히 불펜진 등판일수가 적어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로 지난시즌 홀드왕을 거머쥔 KT 마무리 박영현은 시범경기에 단 세 차례 등판했다. 그리고 정규시즌에선 4경기 등판해 ERA 12.46을 기록하며 난조를 보이고 있다. 두산 마무리 정철원도 정규시즌 5경기 등판했으나 ERA 15.00을 기록했다. 좋지 못한 시작이다.

일각에선 공인구 반발력이 높아져 ‘타고투저’가 됐다고도 판단했고, 올 시즌부터 도입된 ‘자동-볼 판정 시스템(ABS)’가 투수보다 타자에게 유리해 투수들의 ERA가 높아졌다고 본다. 그러나 이 감독은 “ABS는 투수에게 더 유리한 것 같다”며 “현재 전체적으로 필승조가 무너지는 경향이 보이는데, 시즌이 일찍 시작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시범경기를 거쳐 ABS를 파악한 타자들은 정규시즌 개막과 동시에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특히 높은 쪽으로 날아드는 공에 반사적으로 반응해, 투수 운신의 폭을 좁히는 데 집중한다. 반면 구위가 올라오지 않은 투수는 ‘높은 공이 약점’이라는 인식은 하고 있지만, 제구나 구위 모두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어정쩡한 공을 던지기 일쑤다. 포수가 설정한 미트 위치와 공이 날아드는 코스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장타를 허용하는 빈도가 증가한다. 이 감독의 진단도 일리가 있다는 의미다.

이제 시즌이 시작됐다. 각 팀마다 10경기도 치르지 않았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항상 4월초에 맞춰 개막을 준비했던 컨디션을 일주일 이상 앞당기니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박영현은 4번째 등판이던 지난 2일 9회초 1사 1루에 등판해 아웃카운트 2개를 모두 삼진으로 솎아내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 감독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구위가 올라오는 모습이다. 구속도 널뛰지 않고 일정했다”고 평했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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