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유다연기자] “PTSD가 도졌다.”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한 누리꾼들은 과거 서양인들에게 겪은 인종차별 논란에 대한 트라우마가 떠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영화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전년도 수상자 키 호이 콴의 손에 들린 트로피만 가져가고 인사를 생략했다. 이후 여타 백인 배우들과 인사를 나눴다.

논란이 일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시상식 뒷풀이에서 키 호이 콴과 친밀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그 어떤 해명도 없이 친하다는 자세를 취하는 게 더 이상하다”는 반응을 남겼다.

영화 ‘가여운 것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엠마스톤 차례 때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엠마 스톤은 전년도 수상자인 양쯔충(양자경)에게서 트로피를 강탈하듯 가져왔다. 이후 친구 제니퍼 로렌스에게 트로피를 건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때 샐리 필드는 제니퍼 로렌스를 만류했다.

다수의 누리꾼들은 이들의 행동을 ‘마이크로어그레션’이라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의도적으로 한 말이나 행동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모욕감이나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엠마 스톤의 무례한 행동에도 키 호이 콴과 양쯔충은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키 호이 콴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고 양쯔충도 12일 개인 채널에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친구 제니퍼 로렌스와 당신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배우들뿐만 논란에 휩싸인 것은 아니다. 시각효과상을 받은 일본 영화 ‘고질라 마이너스 원’ 제작진이 지난해 떠나간 동료를 추모하던 중 수상 소감이 길다며 아카데미 측에서 음악을 틀어 지탄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10년간 전년도 수상자가 시상하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바뀐 과거 시상자 총출동도 의뭉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최고의 영광으로 평가받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21세기 들어 백인 위주의 작품들이 후보에 오르며 그 명성이 빛이 바래는 중이다. 지난해 아시아계의 수상으로 쇄신하는 듯했던 아카데미가 또 한 번 과거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willow6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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