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정신과와 대장항문과를 찾는 환자들은 병을 부끄러워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신병이든 항문에 걸린 병이든 매한가지인데, 누군가에게 알리길 창피해 한다.
정신병동과 정신병 환자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아’)의 주인공 정다은(박보영 분)과 러브라인을 그리는 의사가 대장항문과 동고윤(연우진 분)이라는 건 전략적인 선택이다.
실제로 두 병동의 환자가 소극적이라, 다른 의사들과 달리 정신과와 대장항문과는 환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간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연우진이 연기한 동고윤도 쾌활하고 밝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기다려줄 줄도 아는 성정을 갖고 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정다은도 동고윤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
연우진은 마치 ‘인생 캐릭터’를 만난 것처럼 동고윤을 표현한다. 환자들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 명랑하고, 정다은과 오랜 친구인 송유찬(장동윤 분)과 삼각관계를 그릴 때는 진지한 듯 발랄하다. 정다은이 억지를 부릴 때는 인간적으로 기다릴 줄 안다, “저런 사람이 내 곁에도 있었으면”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어른의 모습이다.

연우진은 “대장항문과 교수다 보니 민망한 상황에 많이 노출됐다. 웃긴 것에 대한 마인드를 없애고, 더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자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정신아’는 어른들의 동화이자 판타지, 순수함만으로 완성”
동고윤이란 이름은 강렬하다. 고윤이라는 이름은 매력적이지만, 동씨라는 성이 함께 불리면서 항문을 연상하게 만든다. 누구나 듣는 순간 이름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는데, 연우진 자신은 이름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몰랐어요. 꽤 시간이 흐르고 누가 말해줘서 알았어요. 이름과 억양 속에서 느껴지는 게 있어요. 고윤은 괴짜에다가 독특한 면이 있는 인물인데 이름의 의미까지 전달되면서 캐릭터가 분명하게 잡혔어요. 그래서 동글동글한 파마도 했어요.”
정신병동을 편견없이 그린 ‘정신아’는 환자들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과 휴머니즘, 이를 그려내는 배우들의 진심이 담긴 연기로 호평받고 있다.

“어른들의 동화이자,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악역이나 악의 없이 사람의 순수함만으로 드라마가 완성됐어요. 빌런이 없어서 뚜렷한 갈등은 없지만, 선의만으로 저희 드라마가 주제의식을 드러낸 것 같아요. 요즘에는 볼 수 없는 드라마라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흔한 삼각관계지만 흔치 않은 클리셰로 완성, 박보영은 천사
동고윤은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정다은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환자와 눈을 맞추고, 환자의 세계관에 들어가서 환자가 원하는 방식의 응대를 하는 의미를 재빨리 캐치한다. 그리고 곧 정다은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달려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동고윤과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송유찬이다. 송유찬 역시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정다은의 곁을 지킨 인물이다. 친구처럼 지낸지만 마음 한구석 다은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다. 동고윤이 정다은에게 다가가면서 송유찬도 황급히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유찬과 고윤은 서로를 응원하기도 하고 적절히 기회도 준다. 흔한 삼각관계인데 흔치 않은 흐름이다.

“서로가 배려하는 삼각관계는 처음이지 않나요? 기존 드라마와 영화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고 나아가는 게 ‘정신아’만의 장점 같아요. 서로 같은 사람을 좋아하면 연적이 되기 마련인데, 공정하게 서로의 차이를 걱정해주고 심지어 브로맨스도 있어요. 보통의 삼각관계를 보통이 아닌 방법으로 표현해내요.”
‘정신아’의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은 정다은이다. 그의 시선으로 정신병을 바라보고, 심지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인간적인 정다은을 동고윤이나 송유찬을 비롯해 병동 간호사들이 이해하고 위로한다. 그리고 동고윤과 박보영은 끝내 사랑을 이룬다.
“보영씨는 처음 뵀는데, ‘천사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정다은 캐릭터가 힘들어요. 분량도 많고 감정의 진폭도 크고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주위 사람을 살뜰히 챙기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에요. 참 대단했어요.”
1984년생 연우진은 만 나이로 불혹을 앞두고 있다. 서른이 될 때는 크게 반응이 없었는데, 마흔을 앞두고는 심란하기도 하고 뒤숭숭한 느낌도 있다고 한다.

“사실 올해 초에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요. 마흔이 됐다는 것 때문에요. 그런데 만 나이가 도입돼 30대를 다시 선물 받았잖아요. 많이 기뻐요. 이제 진짜 40대를 맞이하게 됐는데요. 40대에도 무탈했으면 좋겠고, 제 삶을 더 열렬히 사랑했으면 해요. 앞으론 주위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대하려고요. 멋진 어른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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