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황철훈기자]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사진전이 열린다.
연세대학교 의료원과 현봉학박사기념사업회가 지난달 31일부터 두 달간 세브란스 아트리움에서 ‘현봉학 의사 사진전’을 연다고 5일 밝혔다. 1950년 흥남철수 모습을 담은 사진전으로 사진 속에 담긴 피난민의 표정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껴볼 수 있다. 특히 울고 있는 피난민과 업힌 아이의 웃는 표정이 극한 대조를 이루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흥남철수 사진 외에도 의사로서의 현봉학도 만나볼 수 있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재학, 결혼식, 1953년 유학을 떠나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모습, 뉴저지 뮬런버그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습 등이다.
또 이번 전시회는 동포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던 현봉학을 조명했다. 서재필기념재단 이사장과 미중한인우호협회장을 맡아 현봉학이 전개했던 사업 사진도 관람할 수 있다.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1950년 12월 19~24일 흥남철수 당시 현봉학 당시 고문관이 민간인 철수를 고려해달라고 미10군단 지휘부를 설득하며 했던 말이다.
허락받은 철수 민간인 숫자는 단 4000명. 하지만 민간인 철수 소식을 듣고 함흥역에 모인 인원만 5만여명에 이르렀다. 기차가 실은 민간인 수는 5000명, 나머지는 걸어서 흥남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흥남에 모인 피난민은 기약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피난민은 1950년 12월 19일부터 국군과 UN군 상륙함과 화물선에 탑승해 흥남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몇백여명을 수용하는 상륙함은 평균 5000여명, 최대 1만명까지 태웠다.
12월 24일 마지막 배가 떠났다. 좁혀오는 적의 포위를 뒤로 하고 짧은 시일 내에 군수품을 비롯해 10만명의 병력과 10만명의 민간인을 철수시킨 흥남철수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현봉학은 이때의 공로로 한국의 모세라는 별칭을 얻었고 2014년 12월 민간인 최초로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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