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포수 미트에 공이 ‘탁’하고 꽂히는 소리가 명료하게 들린다. 동시에 관중의 환호성이 터져나오고 이어폰을 통해 캐스터가 “루킹삼진으로 이닝이 종료됐다”고 설명하는 소리가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주파수로 연결된 작은 소형기기를 통해 나온다. 새로운 역사다.

지난 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위즈와 두산베어스의 경기. 1회초 두산베어스 선발 김동주가 2사 만루로 위기를 맞았으나, KT 문상철을 삼진으로 잡고 최소 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심판이 스트라이크 콜을 외치자 1루가 큰 함성과 함께 들썩였다. 그리고 이 순간을 시각장애인 관중도 누릴 수 있게 됐다. 바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음성중계시스템’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1982년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 리그인 KBO리그에 드디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중계시스템이 지난 4일 도입됐다. 서울 잠실구장, 부산 사직구장,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3곳에서 먼저 선제적 운영됐다.

이 시스템 도입이 필요했던 이유는, 경기 현장에서 방송 중계 소리에 의존해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시각장애인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송 중계는 실시간 경기보다 한 템포(약 15초) 늦게 송출되기 때문에 경기장 내에서 시각장애인이 방송 중계만으로 경기를 즐기기 어렵다.

예를 들어 A선수가 홈런을 치면 옆 자리 관중들이 모두 “와~”하며 함성을 지르지만, 방송에서는 아직 홈런 상황을 중계하지 않아 구장에서 직관하는 시각장애인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실시간 음성중계서비스’가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했다. 지난 4일 ‘실시간 음성중계시스템’을 체험해 본 결과, 1회초 두산 김동주의 속구가 포수 양의지의 미트에 ‘탁’하고 꽂히는 소리가 명료하게 들림과 동시에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 관중의 환호, 그리고 캐스터의 해설이 연달아 들렸다. 시간 지연이 0초다. 완벽한 동시간이다.

이 시스템은 지난해 7월, 시각장애인인 국민의힘 김예지 국회의원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아 한국야구위원회(KBO) 허구연 총재와 경기를 관람하며 장애인의 프로야구 경기장 관람 시 불편사항 및 고충과 개선방안에 대해 허 총재와 논의하면서 본격 도입됐다.

KBO는 준비 과정을 통해 지난 4월 초 보도자료를 통해 ‘KBO 리그 구장 내 시각장애인 관람객 중계 음성 지원 시스템을 구축 및 운영할 사업자 선정 입찰을 실시한다’고 밝히며 중계 음성 지원 시스템 사업 추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알렸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최단체지원금으로 진행됐고, 사업 예산은 2억5000만원이다.

중계시스템은 전적으로 방송 중계에 크게 의존한다. 이닝교대시간에 방송중계가 광고화면으로 채워진다면, 음성중계시스템 기기에선 가사가 없는 평화로운 음악이 나온다는 차이점은 있다.

인상적인 점은, 투수의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상당히 박진감을 돋게 한다. 또한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티비(TV) 중계소리보다 크다. 관중의 환호소리도 크게 담아냈다. 여러모로 현장감을 살리려고 노력한 것이 돋보였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2회말 두산 호세 페르난데스가 홈에서 태그아웃될 때 중계 해설진은 “양팀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라고만 이야기했는데, 추후 해설진은 시각장애인 관중을 위해 부연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닝 교대시간에 장내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이뤄지는 관중 이벤트는 중계대상이 아니므로 시각장애인 관중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실구장의 대여 서비스를 진행하는 장소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어 찾기 어려웠다. 향후 보완이 필요해보인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장애인법’에 따라 장애인 관중을 위해 다양하고 실용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중 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인 관중을 위해 보조 청취 기기 제공, 실시간 중계가 가능한 휴대용 라디오가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청각 장애인 관중을 위해서는 소형 패드가 주어지며 화면에 실시간으로 경기 중계 자막이 띄워진다.

집과 구장까지 오가는 버스와 택시 이용 서비스는 물론, 홈경기 일정 및 기타 안내 사항을 점자로 변환해 제공한다. 구장 내 매점과 편의시설에 커다란 점자 글자판과 읽어주는 서비스가 있으며, 구장 내부에도 화살표에 점자가 박혀 있어 길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전동 휠체어나 의료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는 좌석을 우선적으로 제공해주며, 16개의 엘레베이터가 구장 내에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입장도 역시 허용된다.

한국은 아직 미국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KBO ‘중계 음성 지원 시스템’ 사업으로 첫 시작을 알렸다. 이번 사업으로 한국 프로야구도 미국 프로야구처럼 모두가 차별없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시작점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상당히 성공적이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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