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짓 중 하나, 그것은 순전히 힘이나 권력으로 상대나 반대세력을 때려잡으려는 게 아닌가 싶다.

스포츠 경기, 특히 테니스나 배드민턴 등 라켓 종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힘보다 완급조절이 중요하다는 의미.

강한 스트로크나 스매시가 절대적으로 유효한 공격수단이지만, 이른바 ‘닥공’(닥치고 공격)만으로는 철옹성처럼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상대를 허물어뜨리기란 쉽지 않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세기의 대결’이라고까지 불리며 지구촌 테니스 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던 2023 윔블던 챔피언십 남자단식 결승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20살인 스페인의 영웅 카를로스 알카라스는, 윔블던에서만 7차례, 그리고 5연패를 노리던 노박 조코비치(36·세르비아)를 맞아 막판 승부처에서 ‘힘 조절의 미학’이랄까, 그런 능력을 선보이며 생애 첫 윔블던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공이 라켓에 닿는 순간, 적절한 힘을 배분해 네트 바로 너머로 공을 떨어뜨려 상대가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은 예술에 가깝다. 이는 오랜 훈련과 실전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운동감각이 없으면 실패하기 쉬운 기술이다.

5세트 게임스코어 5-4로 앞선 가운데 맞은 자신의 서브게임 상황, 알카라스는 강심장으로 드롭샷을 구사했고, 0-15로 뒤진 위기의 순간엔 다시 상대 허를 찌르는 드롭샷에 이은 절묘한 로브로 천하의 조코비치를 완전히 농락했다.

이날 알카라스의 다재다능한 샷에, 그랜드슬램 남자단식 최다우승(23회)에 빛나는 조코비치는 여러 차례 코트에서 넘어지는 등 흔들리며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조코비치가 자신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당한 뒤 자신의 벤치로 가면서 라켓을 네트 기둥에 쳐 박살 내는 등 무례를 보여줬지만, 알카라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와 같은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고 담담해 보였다.

알카라스는 이미 지난해 19세의 나이에 하드코트에서 열린 US오픈을 제패해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렸다. 이번에 두 번째 메이저 챔피언 등극을 빅3 시대는 저물고 그의 시대가 왔음을 보여줬다.

알카라스의 위대함은, 베이스라인 부근에서의 폭발적인 스트로크, 빠른 발과 놀라운 순발력을 이용한 폭넓은 코트 커버능력, 신기의 드롭샷과 환상적인 발리, 강력한 서브 등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는 점에 있다.

세계랭킹 3위 다닐 메드베데프(27·러시아)는 이번 윔블던 4강전에서 알카라스한테 무기력하게 패한 뒤에 “알카라스는 빅3와 흡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능력 면에서 장차 빅3를 능가할 수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알카라스의 코치인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알카라스를 12살인가 13살 때 처음 봤는데, 그때부터 드롭샷을 구사했고, 네트로 질주했다. 뭔가 다른 선수였다. 역동적이었다”고 언급했다.

그의 이런 평가가 아니더라도 알카라스는 무척 빠르고, 어느 앵글에서도 샷을 구사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수비는 조코비치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신비한 괴력을 선보였다.

조코비치조차 윔블던 결승 뒤 “알카라스는 매우 완벽한 선수다. 나는 그와 같은 선수와 맞붙어 본 적이 없다”며 최대의 찬사를 보냈다.

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인 2023 US오픈(8.28~9.10)은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윔블던에서 치욕을 당한 조코비치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과연 알카라스는 US오픈 2연패에 성공하며 빅3 시대의 종말에 쐐기를 박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전열을 가다듬은 조코비치의 반격이 성공을 거둘 것인가?

팬들의 관심은 조만간 미국 뉴욕 플러싱 메도우의 빌리진킹 내셔널테니스센터의 아서애시 스타디움에 쏠릴 것이다.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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