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자친구랑 달리기 연습 많이 하고 있습니다.”

수업 중 한 수련생이 ‘알쓸호이’ 칼럼을 읽었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역시 최고의 호신술은 달리기인 것 같습니다. 흉기를 든 괴한이 나타나면 둘이 같이 뛰어야 한다고 설득해서 같이 달리고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아차’ 싶었다. 가장 핵심적인 조건 하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수련생의 행복한 운동 데이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되물었다. “둘이 뛰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여자친구분이 뒤처질 텐데, 괴한이 느린 여자친구만 노리면 어떻게 하나? 그렇다고 속도를 맞춰서 뛰면 괴한이 둘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으니 위험한 상황은 계속 이어질 테고….

다행히 여친을 뒤에 두고 뛰었는데도 괴한이 못 쫓아와서 위기를 벗어났다면 이후가 문제다. 자신을 남겨두고 혼자 멀리 뛰어간 남친을 과연 계속 만날까?”

‘잘 달리는 것’은 호신술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뛰기 전 한가지 완수해야 할 미션이 있다. 바로 ‘상대가 쉽게 쫓아오지 못하게 할 것’.

상대의 다리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면 최고다. 다리를 제대로 못 쓰면 달리기 어려우니까. 괴한이 남성이라면 급소인 낭심에 충격을 주는 것도 좋다. 고꾸라진 그 남성은 아마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들 수 있다. 눈을 공격해서 잘 안 보이게 하거나, 잠시 놀라게 해 시간을 버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다. 팔이나 몸통에 큰 충격을 주는 것도 어느 정도 상대의 달리는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당신이 달려서 도망칠 가능성을 높여준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할 때도 이 조건은 굉장히 유효하다. 당신이 달리면서 “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도 괴한이 멀쩡한 상태에서 쫓아온다면 도움의 손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한들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공포심 때문에 쉽사리 나서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을 쫓아오는 괴한이 제대로 달리지도 못할 정도로 다친 것이 보인다면,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기대해 볼 만하다.

자,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분들이라면 어쩔 수 없다. 어떤 무술이든 꾸준히 배우기를 권한다. 그래서 흉기를 든 괴한이 덮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여자친구가 먼저 도망가서 안전한 곳에 갈 때까지 당신이 괴한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상대를 때려눕힐 강력하고 화려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안전을 최대한 지키면서 괴한의 다리를, 여자친구를 붙잡으려는 괴한의 팔을, 당신과 여자친구를 공격하려는 흉기를 봉쇄하고 버틸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남성에게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고? 여성분들도 해야 할 것이 있다. 달리기 연습을 많이 해서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최대한 빨리 도망가 남자친구가 괴한을 붙잡고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날붙이 흉기는 남녀노소 누가 사용하더라도 100% 부상없이 맨손으로 막기는 어렵다. 여성분이 얼마나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는가가 남자친구의 안전 또한 보장하는 셈이다.

최근 멕시코에서 벌어진 강도사건이 온라인에서 화제였다. 한 커플이 길거리에서 오토바이에 탄 강도들을 만났는데,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놔두고 혼자 달려서 도망간 것이다. 남자친구의 ‘배신’에 홀로 남은 여성도 황당했겠지만, 강도들도 어이가 없었나보다. 남자가 도망간 방향을 물끄러미 보다가 빼앗았던 가방을 여성에게 돌려주는 장면이 CCTV에 찍혔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알쓸호이’를 보고 잘못 이해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호신술이라는 게 이렇게 따져야 할 상황과 조건이 많아 어렵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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