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다르다. 가을야구 때 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강렬한 버건디 색상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오랜만이어서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가을, 키움은 강렬했다. 승패를 떠나 경기 내용에 집중하는 선수들의 열정이 가을야구의 주인공을 바꿔 놓았다. 당시 ‘젊은 영웅 군단’은 야구를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히어로즈의 진짜 매력은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10개구단 중 가장 먼저 ‘단체훈련 전 준비를 마치는 팀’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한 곳이다. 개인의 루틴에 따라 경기를 준비하고, 단체훈련은 최종점검 수준으로 가볍게 치른다. 포스트시즌(PS) 때 인상적이었던 장면 역시 준비 과정에 담겼다. 풀스윙을 버리고, 간결하게 타격하는 자세가 눈길을 끌었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업셋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체력이 강한 상위팀 투수를 상대할 수 있는 일종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변화는 대성공. 한국시리즈에서 SSG의 힘에 압도됐지만, 6차전까지 끌고가는 과정은 모든 야구팬을 열광케하기 충분했다.

실제로 히어로즈의 매력은 호쾌한 장타가 아니다. 강정호 김하성 박병호가 차례로 팀을 떠난 뒤 한시즌 40홈런을 터트릴 수 있는 파괴자가 없다. 삼총사가 있을 때도 다른 선수들은 날카로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때려낸 뒤 빠른 발로 추가 진루하는 액티브한 야구를 했다. 다른 팀과 달리, 히어로즈에는 덩치 큰 선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유니크했고, 매년 언더독의 반란을 실현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올해는 다르다. 타격훈련 때부터 조임이 없다. 펜스 너머로 시선이 가 있는 선수가 여럿 보인다. 특기였던 ‘낮고 빠르게’ 대신 ‘높게 멀리’를 외치는 듯한 준비과정이 눈에 띄었다. 힘있는 타자라면 지향해야 할 점이지만, 강점을 지우면서까지 할 만한 도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지난 11일부터 27일까지 15경기에서 키움 타자들은 홈런 5개를 포함해 119안타로 47타점 47득점했다. 타율은 0.239. 28일 고척 롯데전에서 임지열의 역전 결승 만루포로 승리했지만, 타선의 답답함이 해갈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PS 15경기 기록을 들춰봤다. 홈런 11개를 포함해 140안타로 64타점 70득점했다. 타율은 0.276. 지표성적은 가을잔치가 더 좋았다. 집중력이 최고조인 PS 무대였고 상대 에이스급 투수를 줄줄이 만난 점을 고려하면, 히어로즈 타선의 힘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15경기(광주 KIA전 제외)에서는 볼넷 48개를 얻어내는 동안 삼진 107개를 당했는데, PS에서는 볼넷 42개를 얻어내고 삼진 93개를 당했다. 타선의 힘이 지난해 가을만 못하다는 뜻이다.

다른 숫자도 확인했다. 지난해 가을잔치에 히어로즈 타선은 334개의 타구를 만들어냈는데, 타구 속도 시속 140㎞, 발사각 0~30도 사이 타구를 92개 뽑아냈다. 타구속도는 평균 155㎞였고, 발사각은 13.8도였다. 올해는 229개 타구 중 84개를 생산했다.

타구속도는 155.9㎞로 비슷했는데, 발사각이 15.8도로 상향했다. 팀 전체로도 가을잔치에서 10.2도에 134㎞짜리 타구를 뿜어내던 타자들이 올해는 17.2도에 137㎞를 만들고 있다.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 대신 들어올리는 스윙을 하고 있다는 점이 숫자로도 확인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낮고 빠른 타구 대신 빠르고 큰 타구를 지향하는 게 틀렸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활어 같은 생동감이 떨어지면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전락할 수 있다. 네이밍스폰서십으로 운영하는 구단이라면,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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