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5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월세 보장, 목좋은 오피스텔 공개’ ‘그린벨트 해제 임박, 인근 토지 매매’ ‘회사 보유분 상가, 특가로 모십니다’ 등등 원하지도 반갑지도 않은, 나를 유혹하는 홍보성 전화가 수시로 걸려 온다.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언젠가 어디에선가 내가 남긴 흔적이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온다. 개인 전화번호를 장삿 속으로 업자들끼리 사고 팔기까지 하니 누구나 한번쯤 이런 피싱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받아봤을 터. 50년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선데이서울’ 239호(1973년 5월 13일)는 1973년 초, 서울 중구 무교동 어느 비어홀에서 감행했던 기발한 연서 유객 작전을 소개했다.

묘령의 여인이 보낸 손편지 형식으로 작성된 이 연서는 “존경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룻 저녁 피로를 씻을 수 있는 영광을 원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요?”라는 ‘심쿵’한 문장으로 시작해 “X살롱 아무개 올림”으로 끝났다.

문제의 살롱에서는 이같은 야릇한 연서(?)를 여기저기 무차별적으로 보냈다. 술집의 상술이었지만 받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알까’ ‘내 주소를 어떻게 알았을까’라며 발신인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멋진 아가씨를 상상하는 황홀한 순간을 맛봤을 것이다.

당시는 개인 휴대전화 같은 게 없던 시절이다. 집이나 회사전화, 그리고 공중전화가 전부였다. 이런 전화가 아니고 서로에게 직접 연락할 방법은 편지나 엽서가 거의 유일했다.

‘선데이서울’이 전한 연서 유객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문제의 비어홀 사장은 어떻게 하면 손님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유객 연서를 보내기로 했다. 일하는 아가씨는 200여명, 참 많았다. 한 사람이 5통씩을 쓰게 했다.

‘복사를 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펜으로 쓰고 서명해야 한다’ 등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모인 편지는 1000여 통, 전화번호부에서 가려 뽑은 주소, 또 어찌어찌 해서 입수한 기업이나 기관 직원들 주소 앞으로 무차별적으로 편지를 발송했다.

불특정 다수의 주소를 확보하는 방법과 과정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당시에는 시도별 또는 시군별로 꽤 두꺼운 전화번호부라는 것이 있었다. 인구도 많고 전화도 많은 서울시 전화번호부는 엄청 두꺼웠다. 누구나 구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는 가입자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고 전화번호, 주소까지 나와 있었다.

요즘이라면 개인정보 유출이라며 질겁을 하겠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던 시대였다. 집 전화는 대부분 가장의 이름이었고, 이름만 봐도 성별을 대충 유추할 수 있었으니 남자로 보이는 사람만 골랐을 것이다.

어쨌거나 비어홀의 신박한 편지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편지를 받은 남자들은 호기심에서, 아니면 발신인이 궁금해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근처 다른 살롱은 고액의 출연료를 주고 연예인 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도 고전했지만, 그 가게만은 제발로 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였다고 한다.

종이에 꾹꾹 눌러쓴 손편지라는 낭만적 홍보가 적중한 셈이다. 자기 이름을 알고 있는 묘령의 아가씨에게 연서를 받고 가슴이 떨리지 않을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 남자가 총각이든 유부남이든 말이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술도 못 마시고 술집 근처에도 가지 않는 점잖은 노교수가 편지를 받고 아연실색했다. 평소에 착실하기로 소문난 청년에게 이 편지가 배달되면서 주변의 오해로 전전긍긍했다는 등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이름도 얼굴도 모를 여자의 편지 때문에 부부싸움을 했던 집안도 더러는 있었을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에 가정 파탄 소동을 불러왔을지도 모를 50년 전 이야기이다.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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