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개방성이 자신감의 표현이라면 폐쇄성의 기저(基底)에는 욕심과 두려움이 깔려 있다. 문을 활짝 열어놓는 자신감이 쉽게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욕심만 내세우며 자기 텃밭을 빼앗기지 않을까 짐짓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간 자칫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체육은 폐쇄적 풍토에서 자라왔다. 사회와 철저히 유리된 채로, 더 심하게 말하면 ‘고립된 섬’처럼 존재했다고 보면 된다. 올림픽 등 메가 이벤트가 열리면 오랜만에 국민들과 하나가 될 뿐, 그 행사가 끝나면 또 다시 ‘고립된 섬’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사회’로 사는 게 한국 체육의 구조적 병폐였다.

사회에서 고립된 체육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패러다임 시프트가 지난 2016년 단행된 체육단체 통합이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대통합, 한국 체육의 구조적 변혁을 염두에 둔 정책적 결단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6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과연 기대했던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까? 정책의 성패는 현장에 달려 있다. 체육현장에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하겠지만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한국체육을 지탱했던 엘리트체육의 모델은 한계에 도달했다. 오해는 하지말자! 엘리트체육이 지향하는 국제경쟁력을 포기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체육의 본질적 가치가 경쟁이기 때문에 국가가 존속하는 한 체육의 국제경쟁력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다만 체육의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불변의 전략과 함께 가치와 환경,그리고 시대의 변화를 적극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을 찾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경기력이라는 지상과제를 위해 그동안 간과했던 과정의 중요성과 인권이나 학생 선수의 최소한의 학습권 등은 이제 시대에 맞게 새롭게 수정되는 게 옳다.

과거 한국의 체육은 학교체육이 토대를 구축했다. 소수 정예의 엘리트 선수들을 학교에서 육성함으로써 한국 체육을 견인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환경 변화는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합계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불명예를 고려하면 소수 엘리트 중심의 학교체육 패러다임은 더 이상 효과를 낼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전문가라면 누구나 인재풀이 바닥 난 소수 정예의 학교체육 패러다임으로는 한국 체육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제시된 대안이 바로 클럽 스포츠다. 문제는 지난 2016년 패러다임 시프트를 통해 단행된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 모델이 과연 현장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대한체육회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의 체육정책이 고민과 성찰을 통해 잉태되고 제안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나 정치공학적 셈법을 통해 즉흥적으로 제시되는 게 한국 체육정책의 전반적 흐름이다.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검토하는 피드백의 과정 역시 생략되는 게 다반사다. 이게 바로 한국 체육의 부끄러운 민낯에 다름 아니다.

각설하고, 스포츠클럽이 제도권으로 들어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체육 기득권의 힘이 생각보다 세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포츠클럽의 제도적 진입을 자신들의 권역 침입이라도 보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클럽의 등록을 교묘하게 방해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야구 등 인기종목에서 도드라진다. 그것도 중앙 정부나 대한체육회의 감시와 영향이 미치기 힘든 지방에서 기득권의 텃세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은 귀담아둘 대목이다.

새로운 클럽팀의 등록을 용인해주지 않는 방식도 교묘하다. 일단 이런 저런 이유로 꼬투리를 잡고 시간을 끌어 등록 기일을 넘기게 하거나 기득권 세력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한 뒤 시대착오적 담합을 통해 등록을 배제하는 방식이다. 클럽팀 등록이 지체되면 현실의 벽이 높다고 판단한 학부모나 학생들이 새로운 문화와 틀을 갖춘 클럽팀 가입을 꺼리게 되고 기득권 세력들은 폐쇄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굳건한 철옹성을 쌓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이 문체부나 대한체육회로 전달되는 경로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체육 기득권 세력에겐 더할 나위없는 호재다. 만약 지방에서 스포츠클럽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면 문화체육관광부~대한체육회~종목별 단체~해당 종목 지방단체로 이어지는 복잡한 절차와 과정이 있기에 힘없는 민원인에겐 좌절감만 생길 뿐이다.

무려 6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한국 체육의 미래를 이끌어갈 클럽 스포츠가 아직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폐쇄성에 길들여진 체육 기득권 세력들의 강한 텃세 때문이다. 답은 늘 그렇듯 현장에 있지만 정작 감시와 관심을 기울여야할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뒷짐을 쥐고 있어 안타깝다.

체육 기득권 세력들의 텃세가 횡행하는 가운데 체육의 진정한 가치와 건강한 패러다임 시프트를 꿈꾸는 혁신가들의 한숨소리는 더욱 짙어질 뿐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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