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5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점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보잉 747기가 올해 1월 마지막 조립 기체를 인도하며 생산중단을 알렸다. 1970년1월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사에서 첫 선을 보인지 반세기, 전세계 하늘을 누빈 ‘하늘의 여왕’의 귀환이었다.

보잉 747 점보기는 우리나라에 도입 취항한 지 올해 50년을 맞이한다. 50년 전인 1973년 ‘선데이서울’ 239호(5월 13일)는 ‘나는 궁전, 한국에도-아시아 3번째 점보 보유국’이라는 제목으로 기쁜 소식을 특별 화보와 함께 실었다.

대한항공(KAL) 조종사가 미국 시애틀에서 점보기를 인수해 온 때는 1973년 5월초. 보잉 747이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지 3년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가격은 3161만 달러, 당시 우리 돈으로 무려 124억원이었다.

대한항공의 점보 1호기는 비행기 번호 HL7410, 이름은 ‘비약호’(飛躍號)로 명명되었다.

5월16일에는 태평양을 건너 LA로 가는 첫 스케줄이 잡혔다. 태극 마크를 달고 태평양을 건너는 역사적인 취항일은 5월16일, 바로 5·16 군사정변 기념일이었다. 그 시대에 그날은 의미가 컸을 것이다.

점보기는 최신, 최고, 최대 비행기였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JAL’, 인도의 ‘에어 인디아’에 이어 세번째였다.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다. 조종 장치나 시스템 등이 컴퓨터로 작동하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비행기였다. 비행기 자체가 흔치 않던 시대니 “세상에 이런 비행기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 점보기를 인수해 온 조종사는 전국섭 기장으로 그는 다른 비행기보다 오히려 조종이 쉬웠다고 했다. 그만큼 자동화되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국내 1호 점보기는 시애틀을 떠날 때 입력한 비행 예정 시간에서 한 차의 오차도 없이 11시간20분 만에 정확히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했다고 했다. 이런 말이 더해질수록 점보기는 환상의 비행기가 되어갔다.

‘선데이서울’은 승객 400명과 화물 70톤을 실을 수 있는 점보기를 상세히 묘사했다. 높이는 6층 건물과 같고, 한쪽 날개 면적은 테니스 코트만 하다고 썼다. 영화 3편을 동시 상영했고, 12개 음향채널에다 스카이라운지가 있고 화장실이 13개라니 놀랍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그런 수준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더욱이 기내서비스는 환상이었다. 탑승객 모두에게 술을 공짜로 서비스한다는 소식에 주당들은 만세를 부를만했다. (당시 일반 여객기에서는 1등석 손님에게만 술을 주고 있었다) 특별히 취항하는 날에는 손님들에게 향수 등을 선물했다고 한다.

한국땅을 밟은 점보기의 첫 비행은 5월16일 오후 7시였다. 김포공항을 이륙해 일본 도쿄, 하와이 호놀룰루를 거쳐 미국 LA에 안착했다고 했다. KAL은 1호기에 이어 7월 중순 2호기 취항도 예정되어 있었다. 점보기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경제가 도약할 때여서 이런 최신 항공기 도입도 가능했을 것이다. 새삼 또 자부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하늘의 여왕’도 더 좋은 연비, 더 적은 탄소 배출량의 비행기를 찾는 세월의 흐름은 피할 수 없었다.

점보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50년이 되는 해인 지난 1월31일 보잉사는 보잉 747 생산라인 폐쇄를 알렸다. 보잉사가 생산한 마지막 점보기는 이날 미국 신시내티 아틀라스항공 거점공항에 착륙해 마지막으로 인도됐다.

보잉사는 이날 트위터에 비행경로를 공개하고 마지막 747의 항공궤적을 남겼다. 궤적을 연결하면 왕관 모양이 완성되고 그 안에 747이라는 숫자가 담겼다. 보잉사는 “모델명과 함께 왕관을 볼 수 있다. ‘하늘의 여왕’에 대한 인사의 의미를 담았다”라며 감동적인 끝인사를 남겼다.

얼마간은 마지막 보잉 747이 하늘을 날아다니겠지만 해마다 그 숫자는 줄어들 것이다. 어느 날부터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고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남을 날이 올 것이다.

1973년 한국 1호 점보기를 미국 시애틀에서 인수했던 전국섭 KAL 운항부장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하다. 그는 우리나라 민간항공 조종사 1호이자 최초의 점보기 조종사다. 당시 그의 비행시간은 1만8000시간, 베테랑이었다.

공교롭게도 보잉 747의 시대가 저문 올해 1월23일, 그가 캐나다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점보기를 몰고 태평양을 건너온 지 50년이 되는 해에 그는 눈을 감았다. 전 기장의 사망 일주일 뒤 보잉사는 보잉 747 생산중단을 공식화했다. 그는 이래저래 점보기와 많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 됐다.

50년 전, ‘선데이서울’은 대한항공의 점보기 소식을 매우 크게 다뤘다. 먼저 대한항공은 점보기에 근무할 스튜어디스를 뽑았다. ‘선데이서울’ 239호 표지 모델이 바로 그때 뽑힌 ‘미스 점보’ 김근필이다. 스튜어디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 기장도 제복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취항하는 날에는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나와 축하하는 화보도 실었다. 대한민국의 경사였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였고 영화 ‘007 시리즈’에도 등장했던 점보기는 세계의 비행기로 한 시대 하늘을 누비고 다녔다.

이제는 생산중단과 함께 역사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다. 50년 전, 우리나라 점보기 시대를 열었던 조종사 전국섭 기장의 명복을 빈다.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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