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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 정책의 존재 이유는 애오라지 하나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국가이익에 반하는 정책은 폐기되는 게 마땅하다. 하물며 요모조모 따지지 않고 투박한 정치논리로 밀어붙인 정책이라면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맞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단행한 탈원전 정책의 폐기는 합리적이다. 많은 국민들이 편향된 정치적 신념이 국가이익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소를 위해서도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안보가 국가적 어젠다로 급부상하고 있는 사실은 탈원전 폐기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원인으로 부족함이 없다.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지켜 보면서 또 하나의 사안이 불현듯 떠올랐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존치냐, 생태 복원이냐를 놓고 논란을 거듭했던 정선알파인경기장 문제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섣부른 결정이 아쉬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은 ‘가리왕산 생태복원을 위한 범국민협의회’를 발족시켜 14차례의 회의 끝에 지난 2021년 정선알파인경기장의 생태 복원을 결정했다. 말이 생태복원이지 무려 2000억원이 투자된 스키장을 그냥 없앤다는 건 경제성이나 올림픽 레거시(legacy) 등 종합적인 판단을 고려할 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2024년까지 3년간 곤돌라의 한시적 운영을 선심쓰 듯 제안했지만 이는 게도 구럭도 놓치는 우스꽝스런 발상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생태 복원에 대한 문제점도 적지 않다. 복원에 소요될 막대한 비용이나 복원이 야기할 2차 환경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지하 매설물 등 폐기해야할 영구 시설물이 무려 7만t에 이르며 이 시설물은 어쩔 수 없이 2차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정선알파인경기장은 아름다운 풍광과 아기자기한 코스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다. 올림픽 레거시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고,아시아 알파인 스키의 메카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무조정실의 결정과정에서 논란도 적지 않았다. 우선 절차적 정당성 문제다. 협의체 구성에서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대한스키협회 등 체육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관련 단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배제됐기 때문이다.

권력교체로 합리적 판단이 가능해진 정치지형도 결코 흘려버릴 수 없는 중요한 변화라는 지적이다. 좌파 정권과 우파 정권의 관심 담론은 다를 수밖에 없다. 환경과 생태계 문제는 좌파 정권에선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였기에 복원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환경 문제는 진보 지지층의 표심과 직결돼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 같은 이유로 경제성에 바탕을 둔 국가의 이익이나 올림픽 레거시 같은 체육의 가치는 결정과정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도 표심(票心)과 연결된 꿈틀거리는 정치논리가 감지돼 걱정이 앞선다. 지역 이익이라는 겉옷 속에 숨어 있는 날선 정치논리가 섬찟하다. 표심을 의식한 정치공학적 셈법의 논리가 이 사안을 관통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정선군이 경기장 복원 결정을 받아들이면서 반대급부로 원하는 게 있다는 얘기는 흘려버릴 수 없는 포인트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최근 정선군은 국가정원 사업에 목을 매고 있다. 일종의 주고받는 ‘정치적 딜’이 이뤄지고 있지 않을까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선알파인경기장을 존치시키면서 경기장 주변의 환경 생태계를 조화롭게 가꾼다면 더 좋은 국가정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두 사안은 가치의 충돌이 아닐 뿐더러 얼마든지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양단불락(兩端不落)의 상생의 결정이 충분하다는 게 필자의 변함없는 소신이다.

그런 참에 정선알파인경기장 존치를 위한 낭보도 전해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동계올림픽 개최 후보도시 부족으로 순환개최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AP통신은 이 소식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북미의 솔트레이크시티와 밴쿠버, 아시아의 평창, 유럽의 스위스와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등이 후보 도시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정선알파인경기장이 대륙별 순환개최 후보도시로 떠오르면서 꺼져가던 경기장 존치의 불씨를 힘겹게 살려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4일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2023년 대한민국 체육비전 보고회’에 참석해 불을 댕겼다. “스포츠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윤 대통령의 선언은 정선알파인경기장 존치에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경기장 건설비용 2000억원을 포함해 주변시설까지 물경 4000억원이 투자된 스포츠인프라를 허공에 날리는 결정은 대통령이 밝힌 미래성장 동력의 엔진을 야멸차게 끄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환경과 생태의 가치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복잡다단한 변수를 단순화해야 현명한 답을 구할 수 있다.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상황에선 무엇보다 시선과 관점이 중요하다. 지역과 집단의 이익을 떠나 보편적 가치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게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솔로몬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정선알파인경기장의 미래는 국가와 국민의 눈높이에서 결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아니,그렇게 하는 게 전적으로 옳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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