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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KBO 대학생 마케터 모집 공고문.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딜레마다. ‘기회 제공’ 측면과 ‘노동력 착취’ 사이에서 말이다.

프로야구 개막을 앞둔 각 구단들이 새 시즌 준비에 한창이다.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채용연계형 인턴을 뽑는 등 분주하다. 매년 이 시기에 KBO가 선발하는 ‘대학생 마케터’도 어김없이 공고가 나왔다. 인기도 많다. 20:1 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다. 그런데 이 ‘대학생 마케터’, 문제는 없을까.

취업준비생 A씨는 KBO 대학생 마케터로 선발돼 1년간 일했다. A는 “월 5만원을 지급받고 일했다. KBO 대학생 마케터는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글을 올리는 활동을 한다”며 “제작하는 컨텐츠마다 투여되는 시간이 달랐다. 특히, 영상 편집 및 제작과 포토샵 업무를 맡은 마케터는 업무량이 상당했을 거다. 이들이 투자한 시간에 비해 5만원은 적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도 한때 매년 이 시기가 되면 ‘대학생 마케터’를 선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B씨는 코로나19펜데믹(전세계대유행) 이전 한 프로야구단에서 대학생 마케터로 일했다. B는 “교통비 정도만 받았다”며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진행한 업무에 비해 적은 일당을 받은 것은 맞다. 노동 착취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지난 2019년, 모 프로야구단에서 일한 대학생 마케터가 고용노동부에 해당 구단을 노동 착취로 신고를 한 뒤로, 대부분의 구단이 대학생 마케터 선발을 중단했다. B가 일한 모 구단도 현재 대학생 마케터 선발을 중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구단 관계자는 “받는 돈에 비해 과한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생각한 학생 측에서 구단을 고발하는 일들이 생겨 부담된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대두한 인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한화, 키움, 롯데, NC 구단 등은 2018~2021년을 마지막으로 대학생 마케터 선발을 중단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향후 대학생 마케터 선발 계획은 따로 없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KIA 관계자는 “운영 당시 마케터들이 학교 수업 등의 이유로 출석하지 못하는 등 연속성의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폐지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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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두산베어스가 올린 2023년 구단 대학생 마케터 공고문.

현재까지 대학생 마케터를 선발하고 있는 구단도 있다. 두산베어스다. 구단측은 “최저시급을 준수해 활동비를 지급하고 있다. 대학생 마케터들은 구단행사 참여부터 콘텐츠 제작까지 본인들이 원하는 활동을 경험한다. 해당 분야 관심 및 만족도 충족은 물론 취업을 위한 경력에도 도움된다는 피드백을 꾸준히 받고 있다”며 대학생 마케터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밝혔다.

KBO 역시 “회의 빈도는 평균 월1~2회로 진행된다. 활동비 5만원을 지급하는 것은 맞지만 5만원 외에 식사·교통비 등 기타 제반 비용을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활동비가 예년보다 상향됐다. 시험 기간 등 개인 사정으로 인해 회의에 빠져도 활동비를 지급한다. 창작물과 성과물에 대한 댓가의 의미보다는 개인 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개념으로 지급해왔다”고 했다. 업무 부담에 비해 활동비가 적지 않다는 해명이다.

객원 마케터 지원 자격을 ‘대학생’에 한정한 것도 아이러니다. KBO관계자는 “젊은이들의 시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20살에 2년제 전문대학 진학해 졸업한 22살 청년은 자격이 박탈되고, 재수·삼수를 하고 4년제 대학교에 진학해 군 제대까지 마치고 휴학 중인 27살 청년은 자격 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이는 비단 KBO와 프로야구 구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축구·농구·배구 등 프로 스포츠 구단과, 대기업, 그리고 언론사까지 서포터즈, 객원 기자, 객원 마케터 등 직함을 만들어 대학생을 선발한다. 그리고 최저 시급도 지급하지 않는다. 엄밀히 이들은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일하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번 나오는 지적이지만, 그럼에도 철저한 ‘을’인 예비 취업준비생 대학생은 지원할 수밖에 없다.

취업 트렌드가 직무 유관 경험자 우대로 바뀌며 유관 업무 활동 경험 하나가 소중한 오늘날, 기관과 기업이 청년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업무 경험 기회 제공을 방패막이 삼지는 않았는지 ‘갑’의 고민과 자성도 필요하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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