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

[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골프를 칠 때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농담같은 진리가 있다. 머리를 들면 골프샷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팬들을 하늘처럼 모셔야 하는 프로구단 운영도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프로스포츠는 찾기가 쉽지 않다. 메이저 종목들은 대부분 대기업이 진출해 있다. 1980년대 군사정권시절 프로스포츠의 출범이 자생적이지 않았던 게 시작이다. 대기업 오너들이 생각하는 프로구단은 그룹의 총무부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구단은 상품을 생산해서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다. 돈을 쓰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프로팀으로 구단과 기업을 널리 알리고 긍정의 마인드를 심는 무형의 자산을 무시해버린다. 장부상으로만 따진다. 국내에 스타디움, 아레나 등에 네이밍라이트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21년 1월 SK 구단은 1352억 원에 인수한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에게 야구팀은 재벌의 놀이기구 정도다. 야구팀을 인수한지 2년도 채 안돼 KBO리그 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관중동원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서울, 부산 프랜차이즈가 아닌 인천소재 SSG의 관중 1위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SSG 정용진 구단주에게 야구는 E마트 운영보다 훨씬 쉬웠다. 같은 유통기간 롯데 자이언츠는 30년 동안 한국시리즈 정상을 탈환하지 못하고 있는 게 한심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구단을 어떻게 운영하길래 30년 동안 우승을 못하는지가 이해가 안될 것이다.

구단 인수 2년 만에 우승과 관중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과는 1개월도 안돼 오만으로 드러났다. 한국시리즈 우승 단장을 해고하고 고교야구감독 출신을 GM 자리에 앉혔다. 야구단 운영이 아주 쉽게 보였으니 이런 판단도 가능했다. 오너가 결정하는데 시비걸 사람이 있을까. 기업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야구단은 언론에 노출돼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단장 정도를 해고했는데 이런 후폭풍이 나타날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업에서 사장 해고한다고 시민이 시위하지 않는다.

기업과 스포츠단의 차이다. 기업은 언론의 취재접근이 쉽지 않다. 스포츠단은 매일 기자들과 만나야 하고 이른바 소통도 해야된다. 365일 노출되는 게 스포츠단이다.

류선규 단장은 국내 프런트맨 가운데 유일하게 마이너리그를 한 시즌 연수해 신영철 전 사장과 함께 SK의 스포엔터테인먼트의 씨앗을 뿌린 주역이다. 야구단의 운영 및 마켓팅, 홍보를 두루 거친 전문가다. 고교야구와 프로구단을 같은 선상에 놓는 사고 자체가 대단하다.

그동안 이른바 재벌기업이 야구단을 인수했을 때 오만과 자만은 다 드러났다.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우승이 자꾸 멀어지면서 야구단 운영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소요된다.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LG, 2001년 해태 타이거스를 물려받은 KIA가 그랬다.

LG는 인수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다. 이어 4년 뒤 1994년 신인들의 신바람야구로 두 번째 우승에 성공한다. 명문 구단을 지향한 LG는 구리에 최초의 2군 숙소도 만들었다. 구단 운영에서 다른 팀보다 앞서나갔다. 문제는 야구문화가 성숙되지 않는 상황에서 프런트가 선수단을 지배했다는 점이다. LG는 1994년 이후 KS 우승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KIA는 인수 뒤 기아농구단 출신을 프런트에 앉혔다. 농구는 전체 로스터가 15명에 현역 12명의 구조다. 시즌도 짧다. 농구 안목으로 야구를 보는 단장의 감놔라 배놔라에 야구단 감독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기아농구단의 실패로 끝난 야구단 접수였다.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이라는 게 있다. 초보자가 베팅하면 돈을 따는데서 나온 용어다. SSG 정용진 구단주에게는 비기너스의 럭이 크게 작용했다. 겸손했으면 좋았을텐데 야구를 너무 우습게 본 게 탈이다. SSG는 제품 파는 곳이 아니다.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곳이다.

moonsy1028@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