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근 블랙박스

그라운드에서 ‘몸에 맞는 공’의 대표주자는 뭐니 뭐니 해도 타자다. 마치 공을 부르는 자석이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은 타자도 있다. 최정(SK)이 대표적인 ‘사구’의 아이콘이다. 그는 2009년 22개를 시작으로 2013시즌까지 5년 연속 20사구 이상을 기록했다. 2014시즌엔 부상여파로 출장수가 줄며 사구가 줄었지만, 7월 10일 삼성전에서 1개를 추가하며 역대 3번째 150개 사구기록을 완성했다. 역대 1위는 박경완(166개)이고 2위는 박종호(161개)다. 조만간 최정의 역전이 예상된다.

횟수로 따지면 야구장에서 타자보다 더 많이 야구공에 맞는 이들이 있다. 그라운드의 구심이다. 심하면 한 경기에 서너 개를 맞기도 한다. 타자 방망이에 스친 타구나, 포수가 미트로 잡지 못한 공이 심판을 향한다. 그래서 심판도 헬멧과 함께 상반신에 보호대를 필수적으로 착용한다. 그런데 방망이에 맞아 가속도가 붙은 타구는 보호장구 위를 가격해도 그 고통이 엄청나다. 마치 무협영화에 나오는 ‘침투경’처럼 외상은 없는데 심한 내상을 입는 식이다.

몸에 맞는 공은 얼마나 아플까. 선수들에게 물었더니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안 맞아 봤으면 말을 마세요!”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아프다는 것이며, 그 고통은 직접 당해봐야 알 수 있다는 의미다. 뼈를 부수는 고통이다. 살집과 근육이 두툼한 곳은 그나마 낫다. 머리를 포함해 살과 근육이 적은 손과 발, 내장기관이 있는 옆구리, 등골, 목을 잘못 맞으면 통증 뿐 아니라 선수생활을 접을 수 있다.

사구에 별다른 내색없이 꾹 참는 모습을 보이는 넥센 박병호는 “아픈 척을 안할 뿐이지 아파 죽는다. 종아리 같은데 맞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며 “뼈에 맞으면 그 부위가 물컹해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뼈에 맞으면 그 뼈가 말랑말랑 해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단단해진다”라고 했다. 뼈가 무르게 될 정도의 고통이라니. 상상이 안된다.

박병호의 믿기 힘든 공포에 가까운 고통 체험담에 대해, 넥센 이지풍 트레이닝 코치는 “아니다. 단단한 뼈가 어떻게 물렁해지나”라고 방싯하며 “뼈 주변이 타박을 입으면 붓게 되고 그 부분을 누르면 물렁해진다. 그곳에 혈액이나 물이 차면서 물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라고 했다. 알고보면 뼈가 아닌 주변 조직이 물렁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에 맞는 고통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혈관이 다 터져 심하게 멍이 든다. 엉덩이처럼 살집이 많은 곳을 맞아야 한다”며 넌더리를 냈다.

두산 7회말 1사에서, 4번 심재학이 SK 투수 오상민의 실투를 엉덩이에 맞고 있다. 심재학은 7회까지 홈런과 안타, 포볼 그리고 몸에 맞는 볼로 100% 진루했다. <잠실 |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또다른 프로야구팀 트레이너에 따르면, 사구를 맞아 다행히 단순 타박상에 그친다고 해도 낫기까지는 최소 보름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그런데도 타자들은 몸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는다. 엉덩이와 다리로 날아오는 공을 요령껏 맞는다. 타자들은 “그나마 덜 아픈 곳으로 몸을 돌려 맞는다”고 했다. 그렇게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노력을 한다. 때론 타석에서 맞지 않고 피하면 관중들은 “왜 맞지 않냐”고 아우성을 치기도 한다.

타자 입장에서 몸에 맞고서라도 출루하면 여러 가지 플러스 효과가 발생한다. 팀의 공격 기회가 이어지고 본인의 출루율이 높아진다. 상대 투수가 몸쪽공을 던지는데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배짱이 두둑하고 단련된 타자도 몸쪽공에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그 공포를 이겨내고 몸으로 총알 같은 공을 받는 것이다. 맞는 순간 뿐 아니라 맞기 직전까지의 공포, 즉 “얼마나 아플까”하는 그 공포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한 번의 출루를 위해 치러야 하는 고통은 크다. 사구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주는 건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의 심정인거다.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신시내티에서 2014시즌에 텍사스로 이적하며 1억 3000만 달러의 프리에이전트(FA) 잭팟을 터뜨렸다. 그 배경엔 그의 높은 출루율이 한 몫 했다. 추신수는 2013시즌에 타율 0.285에 21홈런·20도루·107득점·112볼넷을 기록했는데, 출루율(0.423)이 내셔널리그 2위였다. 안타, 볼넷과 함께 리그 최다를 기록한 몸에 맞는 공 26개로 만든 기록이었다. 1억 3000만 달러 계약은 사구의 고통을 견디며 따낸 투혼의 열매다.

오늘도 누군가는 타석에서 투수의 공에 맞을 것이다. 그는 정확한 타격을 위해 가능한 오랫동안 공을 보았고, 그 결과 몸 가까이 다가온 그 공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아프지 않다면, 예를 들어, 손목이나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거나, 머리를 강타당해 뇌진탕으로 균형을 못잡을 정도가 아니라면, 사나이답게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1루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검푸른 멍이 진하게 번지고 있을 것이다.

한편 야구선수 뿐 아니라 1, 3루쪽 사진 취재석에서 카메라를 잡고 있는 사진기자와 중계카메라 감독도 늘 파울타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카메라에 야구공이 크게 잡히면 고개를 옆으로 빼면서 타구 위치를 확인하지 않는다. 카메라 뒤에 얼굴을 숨기거나 고개를 숙인다. 뷰파인더에 공이 크게 잡힌다는 것은 타구가 카메라쪽으로 날아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중계카메라 감독은 타구가 자기쪽으로 날아오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내밀다 파울타구를 맞아 광대뼈가 함몰되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했다. 카메라가 때로는 보호장구라는 사실을 깜박한 것이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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