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각각 우산장수와 소금장수를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맑으면 맑은대로 어머니는 웃을 수 없었다. 제대로된 날씨 예보만 있었다면 어머니의 걱정은 필요 없었을 것. 비가 오면 형제가 함께 우산을 팔면 되고, 맑은 날은 함께 소금을 짊어지고 길을 나서면 될 일이다. 널리 알려진 오래된 이야기지만 아직도 기업 경영에 유효한 이야기다. 날씨에 따라 매출이 널뛰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이상 기후는 기업 경영에 위협, 때로는 기회가 되고 있다. ‘날씨 마케팅’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정도로 날씨는 마케팅의 주요 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국내 날씨 마케팅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때 아닌 할인대전, 날씨 마케팅 실패 탓?

올해 2월 국내 주요 백화점은 대규모 아웃도어 제품 할인 행사를 실시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황을 모르던 아웃도어 제품이 땡처리 수준의 가격으로 판매됐다. 이유는 날씨에 있었다. 기상청은 지난 겨울이 예년보다 추울 것으로 예보했다. 이 예보를 바탕으로 의류업체는 생산량을 늘렸고 유통업계는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지난 겨울은 오히려 직전 겨울에 비해 따듯했다. 판매량은 줄고 재고는 쌓였다. 결국 재고 처리를 위해 할인된 가격에 창고의 문을 연 것이다.

2014081101040005359
올해 초 아웃도어 업체는 따듯한 겨울 날씨 때문에 재고량이 늘어나 할인전을 실시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아웃도어 매장.(스포츠서울DB)


최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올해 여름 장마는 온지 간지 모르게 지나갔다. 비가 오지 않는 ‘마른 장마’. 장마 용품 시장은 시쳇말로 죽을 쑤고 말았다. 7월 초부터 중순까지는 장마 대비 용품이 크게 증가하는 시기지만 올해는 오히려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매출이 줄었다. 반면 부진이 예상됐던 에어컨 판매량은 늘었다. 에어컨 업계는 올해 최고 판매량을 달성한 지난해 200만대 수준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채소 가격은 폭등했다.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종합도매시장의 지난달 1일부터 17일까지 채소 평균 도매가격은 한 달 전 대비 최고 58% 오르기도 했다.

◇유통업계, 날씨 마케팅 활발

사본 -[이미지]잠바주스_바나나 우산
날씨 마케팅은 실생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진은 한 음료업체가 비오는 날 실시한 ‘1+1’ 행사 포스터. 제공 | 잠바주스

이처럼 날씨에 따라 매출이 오락가락하면서 기업들 스스로 날씨 정보를 활용한 사례가 늘고 있다. 해운업계와 항공사의 경우는 날씨 정보가 경쟁력의 근간이다. 실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유통업계다 .GS25의 경우 기온에 따라 잘 팔리는 상품과 상품 재고관리를 위해 빅데이터 자료를 활용하고 있다. 가맹점주는 상품 발주시 제공되는 날씨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GS25가 지난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된 올해 7~8월의 날씨데이터 예측 자료를 보면, 최고기온 35도 이상의 폭염을 보인 일수는 2013년 8월 기준으로 총 8일로 6월~8월 평균 매출액 대비 해당일의 최대신장률을 보인 상품군은 얼음 151%, 이온음료 81%, 아이스커피 60%, 기초화장품 54% 등으로 조사됐다. GS25는 이 상품군들에 대해 확보해야 하는 권장 재고 수량을 함께 제공한다.

이마트의 경우 발주시스템에 향후 일주일치 날씨 정보를 제공해 발주에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롯데마트도 기본적으로 발주시스템에 지난 날씨에 대한 분석 등을 제공하고 있다.

홈쇼핑업계도 날씨와 관련된 편성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NS홈쇼핑은 기상청 일기예보를 참고해 방송 편성을 유동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일주일 편성 중 일부 시간대를 비워놓고 편성을 한 후 그 때의 날씨나 상황에 따라 비워둔 시간대에 관련 상품을 편성하여 외부 요인에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NS홈쇼핑 관계자는 “날씨에 따라 이미 편성돼 있는 상품을 즉각적으로 교체하거나 빼지는 않지만 미리 비워둔 시간대에 편성을 채워 넣는 식으로 날씨 마케팅을 하고 있다”면서 “예를 들어 다음 날 갑작스럽게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예보가 되었을 경우 비어있는 시간대에 제습기를 편성했던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날씨마케팅, 안 하나 못하나

날씨 마케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실제 기업의 활용 수준은 아직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국내 날씨 관련 산업 규모는 장비 시장을 포함해 약 4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중 날씨 정보를 포함한 서비스의 비중은 전체 시장의 5%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날씨에 가장 민감한 업종으로 꼽히는 의류업계의 경우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날씨 마케팅에 주저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의류업체 A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상청 쪽에서 정보 데이터도 받아보고 마케팅에 반영하기도 했지만 현재로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은 아니다”면서 “의류업계 특성상 6개월 가량을 앞다퉈 상품을 준비하다 보니 정확성이 확보되지 않는 날씨 데이터의 중요성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날씨에 관련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날씨를 손쉽게 예측할 수 없는 간절기용 제품의 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또 다른 의류업체 B사의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간절기의 날씨는 대처하기 힘든 수준이었다”면서 “이 때문에 봄이나 가을 제품을 50% 이상 줄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날씨 정보가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이터가 아니라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안정장치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민간기상업체 관계자는 “날씨 정보는 공짜라는 인식이 아직도 기업에 남아 있다”면서 “날씨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하면 정확하냐고 되묻는 식이다. 이러면 할 말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정확도를 높인 정보의 다양화도 날씨 관련 산업의 활성화의 전제 조건이다. 날씨 산업과 관련해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경우 벚꽃 개화 시기, 서핑 날씨, 영화제작을 위한 날씨 정보까지 제공하는 업체가 있을 정도로 틈새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

임홍규기자 hong77@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