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는 ‘올림픽을 챙기는 이들’의 약자로 다가오는 2020 도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메달을 위해 피,땀,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윤소윤기자]"제가 가는 길, 도전하는 길, 잘 지켜봐 주세요."
세계인의 축제 2020 도쿄올림픽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지금, 김서영(25·경북도청·우리금융그룹)의 상반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치열했다. 국제수영연맹(FINA) 챔피언스 경영시리즈 광저우 1차 대회와 헝가리 2차 대회 그리고 광주에서 열린 2019 세계선수권까지. 올림픽을 위한 초석 다지기는 계속 이어졌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한민국 수영의 미래를 이끌 또 한 명의 스타로 등극한 김서영. 지난 8월 안방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아쉬운 성적에 그쳤지만, 그는 여전히 도쿄올림픽의 기대주이자 대한민국 수영의 새 길을 열고 있는 스타다.
어느덧 세 번째 올림픽이다. 김서영에게 있어 도쿄는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의 무대다. 25세의 김서영은 8년 전, 만 18세의 나이로 런던올림픽 출발선에 섰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올림픽 시즌이 다가옴과 동시에 국민의 사랑과 관심도 배로 늘었다. 그만큼 부담감의 크기도 확실히 다르다. '베테랑', '아시아의 인어공주', '대한민국 수영의 간판' 등 그가 어깨에 짊어져야 할 타이틀만 수십 가지다.
그러나 김서영은 이 모든 부담감과 관심을 도쿄를 위한 '원동력'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세 번째 꿈의 무대를 1년 앞둔 8월의 끝자락,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를 준비하고 있을까.
◇ 5세의 수영 꿈나무, '아시아의 인어공주' 되다.
김서영의 수영 인생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섯살 무렵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유아 체능단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는 곧 수영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선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였다.
"3학년쯤에 제 영법이 되게 안 좋았어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예쁜 수영을 하길 바라셨고, 교정을 위해 선수 반에 들어갔는데 저희 코치 선생님이 저를 상급반에 넣어버리시더라고요. 하하."
열 살 무렵부터 일찌감치 드러난 재능이 전문가들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당시에는 코치의 손에 이끌려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됐지만, 줄줄이 딸려오는 성과에 꼬마 김서영도 조금씩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사실 선수 하기 싫었는데,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고 하고 싶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김서영의 주 종목은 '개인 혼영'이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필요한 훈련과 노력은 배가 된다. "어렸을 땐 그냥 4종목을 한다는 게 재밌어 보여서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선생님이 봤을 때 좀 괜찮았나 봐요 제가. 하하.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죠."
그렇게 김서영은 '개인 혼영' 종목의 간판스타로 거듭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다. "다른 종목에 비해 힘들지는 않나"라는 물음에도 김서영은 익숙하다는 듯 털털히 답했다. "좀 힘들긴 해요. 하하. 네 종목을 다 해야 하고, 한 종목이 안 되면 결과로 바로 나타나니까. 그만큼 더 신경 써야 하고. 네, 결론은 뭐 힘든 것 같다는 뜻이 되네요? (웃음)."
김서영이 처음 선수촌에 입성했을 당시 나이는 고작 열 여섯이었다. 이후 김서영은 생애 첫 올림픽인 2010 런던올림픽에서 당당히 국가대표 출사표를 던졌다. "중학교 3학년 때 선수촌을 처음 들어갈 때는 큰 포부도 있고 목표도 있고, 꿈이 생기는 단계였어요. 기록도 한창 줄였는데 하필 그때 부상을 당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큰 시합을 못 나갔죠. 그때 저는 다른 건 몰라도 런던 올림픽은 꼭 나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첫 올림픽, 김서영은 그저 무명에 불과한 어린 선수였다. 그러나 김서영에게 있어 '런던'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다른 국제시합이랑은 또 너무 다르잖아요. 잘하는 선수들,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 있고.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로 좋았어요. 모르셨겠지만(웃음) 제 기록도 깼고, 거기서 있었던 기억들 다 좋았어요, 저는."
◇ 성장통, 그리고 자카르타의 '영광'
누구보다 단단한 어깨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그였지만, 그런 김서영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사실 21세 때까지 어깨 부상이 쭉 있었어요. 그 부상 때문에 계속 통증이 심하고 아프고, 힘들었죠. 뭔가 목표를 하고 꿈을 꾸고 도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포기하게 되고, 그런 상황들이 몰려오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는 알을 깨기 위한 성장통이었다. 2016 리우올림픽, 김서영은 개인 혼영 200m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후 2017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200m 부문 결승에 진출하며 최종 6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부상에서 괜찮아지고 훈련을 제대로 하면서부터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리우에 출전했어요. 이후에는 결승 진출이 목표가 되고, 다시 도전하게 되고, 그런 마음들이 다시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야도 달라지고,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죠."
묵묵하지만 무거웠던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순간은 2018년, 자카르타에서의 여름이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김서영은 200m 개인 혼영 금메달을 따냈으며, 한국신기록과 대회 기록을 모두 경신하며 대한민국 여자 간판 수영 스타로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2분 08초 34. 그리고 1위. 매 순간 침착한 레이스를 펼쳐온 김서영은 터치패드를 찍자마자 환호했다. "진짜 뭔가 딱. '아, 내가 드디어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기실로 걸어가는데 저희 팀이 고생하고, 제가 열심히 했던 그 힘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괜히 막 울컥해서 울어버렸죠. 근데 애국가 나올 때 울면 좀 그러니까, 그땐 좀 참아봤어요 하하."
"선발전 때 기록이 잘 나왔어요. 그 당시에 세계 랭킹 1위를 해 보기도 했고. 제가 살면서 그런 걸 꿈꾸는 순간이 없었는데, 결과가 좋다 보니까 잘 준비하면 아시안게임 때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몸 상태도 좋았고, 이래저래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 광주의 교훈, '좌절' 아닌 '도쿄 전초전'
"그런 함성 소리는 처음이었어요. 들었을 때 가슴 벅찼죠."
2019 수영 세계선수권은 대한민국 광주에서 펼쳐졌다. 박태환의 불참이 확정되며, 티켓 파워를 만들어 내야 하는 임무는 자연스레 김서영에게로 넘어갔다. 자국에서 펼쳐지는 세계선수권. 막중한 무게감을 등에 업은 이 대회는 매 경기, 매 순간마다 김서영에게 큰 부담이자, 넘어야할 산이었다.
"부담감이 컸던 것 같아요. 그전 헝가리 대회에서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좋은 기록이 나왔거든요. 잘 준비하면 괜찮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시합장에서 확 부담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어요. 괜찮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도 몸은 긴장하더라고요. 제가 원하는 레이스를 펼치지 못했죠."
경기장을 찾은 국민들은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수영 스타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물살을 헤치는 김서영에게 아낌없는 환호와 응원을 쏟아부었다. "그런 응원, 그런 경험은 저한테 처음이니까…함성 소리 들었을 때 가슴 벅차고 한편으로는 내가 진짜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또 생기더라고요."
"접영할 때는 함성이 잘 들리는데 배영은 물 속에서 하는 거라 잘 안 들리거든요. 근데 그때는 정말 잘 들렸어요. 너무 감사하고, 진짜 너무 좋은데, 제가 제 시합에 몰입하지 못하고, 신경을 너무 썼던 것 같아요. 그런 환호 소리를 받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웃음)."
200m와 400m 모두 김서영에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성적이었다. 경기 직후에는 '대관식 실패', '광주에서 무너지다' 등의 표현이 가득 담긴 평가지들과 성적표들이 줄을 지었다.
"제가 노력한 거에 비해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와서 처음엔 내 노력이 헛된 것 같단 생각에 힘들었어요. 아시안게임 끝나고 1년간 이 시합만 보고 준비했으니까, 결과가 이래서 너무 힘들었는데…"
그러나 김서영에겐 이 마저도 관심이자, 과정의 일부일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음엔 어떤 시합을 뛰어도 이 만큼의 부담감을 갖고 뛰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하. 다음에는 이런 일이…그러니까 음, 이렇게까지 부담감을 갖고 뛰진 않을 것 같아요!"
◇ '선수' 아닌 '사람' 김서영 "햄버거 좋아하고, 주말엔 쉬고 싶고 그래요!"
인터뷰 막바지엔 수영 선수로서의 김서영이 아닌 스물다섯, 사람 김서영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체중 조절, 식단 조절, 근력 관리들은 운동선수에게 있어 숙명과도 같은 부분이지만 김서영에겐 조금 다른 의미였다.
"아 사실 저는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어서. 하하. 스트레스 받으면 살이 빠져서 체중을 유지하려고 먹어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진 않아요. 그냥 자극적인 음식 먹으면 속이 안 좋은 건 있어요. 예전엔 먹고 나서 '아유 뭐 아프면 하루 이틀이면 낫겠지 뭐' 이러면서 먹었는데, 요즘은 제가 힘들어서…스물다섯 넘고 나이 들어서 그런 가봐요 하하. 아, 햄버거는 여전히 좋아해요(웃음)."
수영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물었을 때도 김서영은 크게 고민하지 않는 눈치였다. 여전히 수영은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인생의 일부이자 즐거움이었다. "선수라면 당연히 부상이 힘들죠. 근데 제가 그때보다 지금은 근육량도 많아졌고, 안 아프게 수영하는 방법을 나름 터득해서. 괜찮아요. 예전만큼 아프고 그러진 않습니다!"
훈련이 없는 날엔 김서영도 그저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예전엔 친구들이랑 나가서 놀고 이런 거 좋아했는데, 올해는 훈련 때문에 집에 자주 못 왔어요. 훈련만 하다 보니까 쉬고 싶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이것도 나이 때문인가요? 하하.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주말에. 쉬지 않으면 평일에 뭘 할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는 선수가 아닌 인간 김서영으로서의 꿈을 물었다. "제가 수영선수를 그만두더라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스포츠 공부를 더 해서 이런 제 경험을 토대로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직은 구체적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단 이런 마음이에요."
지금의 김서영에게 있어 가장 큰 목표는 2020년 도쿄 올림픽, 그리고 메달이다. 첫 번째 올림픽은 좋은 경험, 두 번째 올림픽은 무언가를 다시 꿈꾸게 만드는 발판이었다면, 다가오는 세 번째 올림픽은 가장 구체적인 목표이자,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이다. 인터뷰 말미 김서영은 "그냥 제가 이런 걸 도전할 수 있는 과정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이런 상황 모든 게"라며 남다른 마음가짐을 전했다.
'수영'이라는 종목에 있어 세계의 벽은 여전히 높다. 박태환이라는 슈퍼스타의 그늘과, 이에 따른 국민의 기대, 부담은 곧 김서영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서영에게 있어 어떠한 걸림돌도, 장애물도 아니다. 런던에서 시작된 작은 꿈은, 리우에서 단단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광주에서의 교훈을 토대로 도쿄의 물살을 가를 충분한 윤활유가 됐다.
"올해는 제가 이루지 못한 게 많아요. 알아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제가 앞으로 도전하고, 가는 길에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제가 또 잘할게요.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뿐 아니라 한국 수영 자체를요."
사진 | 윤소윤기자 younwy@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DB,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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