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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19일 개봉하는 영화 ‘마약왕’(우민호 감독)이 기대감이 큰 만큼 영화에 대한 여운도 적지 않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새로 내놓은 신작이자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배우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서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름값만으로도 그들의 전작들과 비교아닌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인데, 과연 이들은 관객들의 기대감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까.
◇‘연출왕’ 우민호 감독X‘연기왕’ 송강호‘마약왕’은 1970년대 근본 없는 밀수꾼 이두삼(송강호 분)이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마약왕이 된다는 이야기. 반공이념이 무섭게 지배하던 시절 “빨갱이로 잡혀가나, 밀수로 잡혀가나 굶어죽는 것보다 낫다”며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조총련 출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애국이 별게 아니다! 일본에 뽕 팔믄 그게 바로 애국인기라!”며 자랑스레 마약 사업을 하는 이두삼은 “이 나라에서 전화 한통 할 빽 없으면 못 산다”고 하는 등 다양한 대사로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비꼬는 재미가 감독의 전작 ‘내부자들’ 못지 않다.
굳이 ‘내부자들’과 비교가 되는 점이라면, ‘내부자들’의 성공요인 중 하나였던 권력의 카르텔을 비판하는 통렬한 카타르시스가 ‘마약왕’에는 없다는 사실. ‘마약왕’은 이두삼이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 분)를 통해 중앙정보부까지 줄이 닿는 등 고위 권력층의 비리도 얼핏 이야기는 하지만, 비뚤어진 개인의 일대기를 조명하는데 그친다. 그로 인해 ‘내부자들’보다 다루는 이야기의 깊이나 충격이 덜 할 수 있다.
또한, ‘내부자들’은 백윤식, 이병헌, 조승우 등 누구 하나 연기력에서 뒤지지 않는 배우들이 조화로운 호흡으로 시너지를 일으킨 감동도 대단했다면 ‘마약왕’은 송강호 외에도 이성민 조정석 배두나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지만 송강호의 원맨쇼에 가까워 팀워크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왕’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타이틀롤을 맡은 송강호가 있기 때문이다. ‘연기신’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는 극초반 밀수로 돈맛을 보고 흥명 나게 춤을 추는 모습부터 극후반 마약에 중독돼 미치광이가 된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 변주를 펼치며 ‘마약왕’이라는 제목처럼 ‘연기왕’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다.
물론 다른 배우들도 모두 명연기로 영화를 꽉 채우고, 이두삼의 아내 성숙경 역으로 등장하는 김소진이 이 영화의 발견이라면 발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도 봤던 느낌’을 주는 이유는 영화가 이야기하는 소재적 익숙함 때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70년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수성가하는 비뚤어진 사업가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는 TV에서도 보아온 소재였던 것. 단지 ‘마약왕’은 마약이 주는 충격이 조금 다를 뿐이다.
제목이 주는 차이점이 이미 감독이 그리려는 큰 그림을 알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내부자들’은 복수형으로 멀티캐스팅의 힘을 극대화하는 영화로 만들 작정이었다면, ‘마약왕’은 단수형으로 왕을 집중조명하겠다는 뜻이 보인다. 계획대로 주인공을 지휘하고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우민호 감독은 영화 공개 전 ‘연출왕’이라고 소개됐던 것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적재적소 BGM결국 ‘마약왕’은 송강호를 따라가며 보는 재미의 영화인데, 그렇다고 또 다른 재미 요소가 없지는 않다. 바로 영화의 배경음악이 영화를 따라가는 큰 재미를 줘서 적재적소에 깔리는 BGM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비트감이 넘치는 영국밴드 직소(Jigsaw)의 ‘스카이 하이’(Sky High)로 ‘마약왕’의 위트를 일찌감치 눈치채게 하고, 이두삼의 인생에 따라 국내 대중가요부터, 팝음악,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배치한 다양한 음악들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또한, 이들 음악들은 70년대 음악들로 영화의 독특한 시대의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톡톡히 제몫을 한다. 영화의 초반과 끝을 장식한 김정미의 ‘바람’은 1973년 발표된 곡으로, 70년대의 리얼리티를 살렸다. 이밖에도 국내곡으로는 ‘바람’을 비롯해 정훈희의 ‘안개’, 군가 ‘멸공의 횃불’ 등이 쓰였다.
밀수꾼 시절에도 턴테이블에 국내 대중가요를 틀던 이두삼은 공장 노동자들이 600원을 벌던 시절 마약으로 10억을 버는 마약왕이 되어서는 우퍼 스피커로 슈베르트의 ‘마왕’을 감상하는 등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인물. 인물의 기승전결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영화의 큰 재미다.
‘마약왕’의 음악은 ‘택시운전사’로 청룡영화상 음악상을을 수상하고, ‘내부자들’,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의 전성시대’ 등 다수의 범죄 영화에서 활약한 조영욱 음악감독의 지휘로 이뤄졌다. ‘마약왕’의 신뢰감을 더하는 또 하나의 스펙이 아닐 수 없다.
cho@sportsseoul.com
사진|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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