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환
한국의 차준환이 17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 경기에 출전해 멋진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차준환은 프리 스케이팅에서 165.16점을 받아 총점 248.59점으로 개인 베스트를 기록했다. 박진업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남자 피겨의 희망 차준환(17·휘문고)이 예상밖 낭보를 전했다. 세계 피겨 ‘왕중왕전’ 성격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한국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그가 평창 올림픽 직후 시즌부터 업그레이드된 연기력으로 입상함에 따라 오는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것도 꿈만은 아니게 됐다.

차준환은 지난 8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018~20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총점 263.49점을 획득해 지난 3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 네이선 천(미국·282.42점),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우노 쇼마(일본·275.10점)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한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6개 대회 성적을 합산해 상위 6명까지 출전할 수 있는 ‘왕중왕전’이다. 피겨 선수들은 6개 대회 중 두 차례 출전할 수 있는데 차준환은 10월 캐나다 2차 대회와 11월 핀란드 3차 대회에서 연이어 동메달을 따내고 파이널 티켓까지 얻었다. 올림픽 2연패를 일궈낸 하뉴 유즈루(일본)가 부상으로 불참했지만 천과 우노가 건재하고 이번 시즌 컨디션이 좋은 미할 브레지나(체코) 등이 있어 차준환이 메달까지 목에 걸 것으로 예상한 이는 적었다. 그러나 차준환은 8일 ‘로미오와 줄리엣’에 맞춰 연기한 프리스케이팅에서 174.42점을 얻어 종전 자신의 최고 기록(169.22점)을 깨트린데 이어 쇼트프로그램을 포함한 총점에서도 기존 최고 점수(259.78점)를 넘기며 쇼트프로그램 3위였던 브레지나를 제쳤다.

한국 선수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입상한 것은 김연아 이후 두 번째다. 남자 선수로는 최초다. 김연아는 지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번 출전권을 얻어 우승 3번, 준우승 한 번을 이뤘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직후부터 두각을 나타낸 끝에 그랑프리 파이널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이를 발판 삼아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로 한국 스포츠사의 신기원을 일궈냈다. 차준환 역시 만 17세의 어린 나이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이번 메달 획득으로 자신감을 얻어 베이징 올림픽까지 내달릴 동력을 얻었다.

천부적인 자질, 도전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멘탈, 남자 스케이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표현력, 세계 최고의 코치 반열에 올라선 브라이어 오서의 지도력이 어우러져 차준환의 베이징 올림픽 메달까지 점쳐진다는 게 피겨계의 평가다. 변성진 ISU 테크니컬 패널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회복하면서 쑥쑥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타고난 선수로 볼 수 있고 거기에 표현력이 좋기 때문에 점프만 정확히 배우면 될 것으로 여겨졌다. 일찌감치 캐나다로 떠나 오서 코치에게 배운 것이 점프 습득이나 체력 관리에 도움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귀공자 같은 외모와 달리 자신의 과제를 두려움 없이 헤쳐나가는 정신력도 차준환의 성장을 돕는 숨은 원동력이다. 차준환은 그랑프리 파이널 입상 뒤 “‘(남자 피겨)개척자’라는 수식어가 부담되지만 그 부담을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로 만들고자 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난 6월 ISU는 프리스케이팅 점프 과제를 8개에서 7개로 줄였다. 또 4회전(쿼드러플) 점프는 6개 종류별로 한 가지씩만 할 수 있고 경기 후반 점프의 수도 제한(쇼트 1개·프리 3개)했다. 반면 각 기술별 가산점을 뜻하는 수행점수(GOE)의 범위는 기존 7등급(-3~3점)에서 11등급(-5~5점)으로 넓혔다. 피겨가 갈수록 ‘점프 대회’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고난도 점프의 실수를 정확하게 반영하자는 취지에서다. 결국 각각의 점프를 완벽하게 해내면서 예술성을 높이는 편이 유리하다. 이 점이 차준환에게 유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차준환은 기존 4회전 살코에 이어 이번 시즌부터 4회전 토루프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천과 우노는 4회전 점프를 프리스케이팅에서 4번 하고 있다. 차준환이 쿼드러플 점프를 다양하고 정확하게 배워나갈수록 톱클래스 선수들과 격차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변성진 테크니컬 패널도 “ISU가 4회전 점프로 승부를 거는 일을 막고 있다. 그렇다면 차준환에게 플러스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만 17세인 차준환은 베이징 올림픽 때 막 남자 피겨 스케이터로서 전성기에 접어든다. 2026년 동계올림픽 때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다. 그랑프리 파이널 동메달로 차준환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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