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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천상과 맞닿은 바위 위에 세 명의 여인이 발가벗은 채 뜨거운 햇살을 쬐고 있다. 언뜻 보면 일광욕을 즐기는 듯하고 한편으론 미묘한 안개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는 듯하다. 하지만 세 여인은 같은 사람으로 클리티에라는 님프(물의 요정)다. 매혹의 나신이 따사로운 햇살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듯 보이지만, 이 여인은 지금 사랑의 고통과 열병에 휩싸인 채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눈부신 햇살은 태양의 신 헬리오스를 상징한다. 하늘에서 지상의 세계를 엿보던 헬리오스는 클리티에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 클리티에게 접근한다. 전지전능한 신이기에 실패란 없는 법. 헬리오스의 유혹에 넘어간 클리티에는 헬리오스와 꿈같은 사랑을 나눴고, 사랑은 영원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한 헬리오스에게 클리티에는 수많은 꽃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헬리오스는 클리티에와 사랑을 나눈 후 또 다른 여인 레우코테아를 손에 넣었다.
레우코테아의 매력에 빠져 잊혀진 여인이 된 클리티에. 사랑에 눈이 먼 클리티에는 헬리오스의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 ‘시기와 질투’라는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레우코테아의 아버지에게 딸의 애정행각 일러 바치며 결국 레우코테아를 죽음으로 몰아버렸다. 연적의 죽음으로 헬리오스의 사랑을 되찾을 거라 믿었던 클리티에였지만 헬리오스는 상실감에 클리티에를 증오하게 됐다. 헬리오스의 버림을 받게 된 콜리티에는 매일매일 발가벗은 채 하늘의 태양을 쳐다보며 그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속절없이 흐르는 하염없는 시간. 결국 그녀의 발과 다리는 흙과 하나가 되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아니, 헬리오트로프(Heliotrope)가 되었다.
그림은 관람자들의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향하게 만든다. 위쪽의 눈부신 태양과 아래쪽의 암흑의 명부가 대비을 이루며 여인의 육체와 표정을 통해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세명은 클리티에가 점차 헬리오트로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용모와 눈부신 나신으로 헬리오스를 잡아 보려는 첫 번째 모습, 고통을 감내하며 사랑의 몸부림을 치는 두 번째 모습, 이윽고 무한한 어둠의 공간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태양을 향해 마지막 손을 내밀어 보지만 이미 몸속의 많은 부분은 죽음이 되어버린 세 번째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 사람 모두 구원의 몸짓을 하고 있지만 눈은 감겨져 있다. 몸부림을 쳐도 사랑이 돌아 올 수 없음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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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속의 클리티에’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 2000년전 로마 제국의 작가 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라는 책을 썼다. 당대의 황제 줄리어스 시저의 이야기를 비롯 그리스와 로마에 전승되어 온 오랜 이야기를 담았다. 클리티에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은 불멸의 존재이자, 초법적인 존재다. 신들이 행하는 행위는 어떤 행위라도 악행이 될 수 없었다. 피해와 고통은 인간 만이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었다.
▶ 어렸을 적 우리는 해바라기가 항상 태양을 향해 있어 클리티에 이야기의 소재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클리티에 이야기는 2000년도 더 된 아득한 그리스 신화 때의 이야기다. 해바라기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16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다. 원산지가 멕시코로 클리티에의 이야기와는 맞지 않는다. 헬리오트로프처럼 태양을 향하는 모습과 특유의 화려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헬리오트로프를 대체하게 됐다. 헬리오트로프(Heliotrope)는 보라색의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로 향이 좋아 향수의 재료로 쓰인다. 말뜻은 ‘헬리오스(Helios)를 향하는(Tropos)’이라는 뜻으로 꽃말도 ‘끝없는 사랑’이다. 지금도 태양을 보면 고개를 돌려 미소짓는 가련한 꽃이다.
▶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erbert James Draper, 1863 ~ 1920)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다. 런던에서 태어나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1888년부터 1892년까지 로마와 파리를 여행하며 많은 스케치와 작품을 제작했다. 드레이퍼는 그리스 신화를 비롯 역사적 소재에서 그림의 모티브를 삼았다. 대표작 ‘이카루스의 탄식’ 은 1900년 파리 박람회에서 황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후반기에는 초상화 제작에 몰두했다. 대화면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를 담았기 때문에 드레이퍼는 생존시에도 유명 화가로 인정받았다. rainbow@sportsseoul.com 그림출처 | Wik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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