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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는 기이한 지형에다 힘찬 산세, 아름다운 바다와 섬 등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매력포인트로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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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기이한 바위. 이런 지형이 어디에 또 있을까.

날이 추워질수록 겨울바다는 한번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찾은 곳은 바로 부안 변산반도다. 푸른 바다와 근사한 섬, 그리고 그 사이로 사라지는 멋진 석양. 게다가 남쪽에선 드물게 눈이 많은 지역인 전라북도 서쪽 지방인지라 어쩌면 눈구경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지금은 조류인플레인자(AI)의 숙주로 가금류 사육농가들의 원망을 사고 있지만 겨울 손님 철새도 자주 출몰하는 곳이니만큼 겨울여행의 삼박자를 골고루 즐길 수 있다. 어느 쨍하고 춥던 날 변산반도를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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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해물맛으로 유명한 군산 복성루 짬뽕

◇새만금을 따라 변산 가는길
서해안 고속도로는 길지만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지루하지 않다. 일산집에서 줄포IC까지는 3시간 남짓. 물론 평일에 출발할 경우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시장기가 돌아 군산에서 빠져나갔다. 군산과 부안의 변산반도는 새만금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군산에는 복성루라는 짬뽕 명가가 있지 않은가?. 시계를 슬쩍보니 얼추 점심시간에 이르기 전에 복성루에 닿을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어김없이 기나긴 줄이 이어져있다. 짬뽕 한그릇을 맛보기 위해 귀가 얼어붙은 날에 줄을 섰다. 뒷줄에 초등학생 아이를 데려온 부모가 있었지만 양보할 수 없었다. 귀가 남의 귀처럼 느껴질 때쯤 나온 짬뽕 속에는 바다에서 볼 만한 생물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이 마치 작은 어항을 받아든 듯 했다. 맵싸라한 국물은 장도를 떠나온 이의 허한 위장과 냉한 가슴을 풍부한 맛과 뜨거운 온도로 채워줄만큼 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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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에서 바라본 바다. 섬으로 막혀 거대한 호수 가운데 서있는 듯 하다.

짬뽕을 휘발유 삼아 기운차게 새만금 방조제를 달렸다. 정부와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세계 최장 방조제 33.9㎞와 프랑스 파리의 5배 크기를 지닌 새만금의 용도는 놀랄만큼 많다지만 정작 내겐 경치가 좋고 심심한 도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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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을 달리다보면 자동차가 아니라 바다를 가로지르는 쾌속선을 탄 느낌을 받는다.

겨울철 추운 날의 특징은 매우 맑다는 것이다. 햇볕을 받아 물색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멀리 작은 섬들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예전에 해무가 잔뜩 낀 날 찾았을 때에 비하면 마치 ‘스마트폰에서 지문 방지 보호필름’을 벗겨버린 정도로 선명도의 차이가 난다. 십여년 전에 갔던 몽골의 초원길처럼 통행 차량이 드물기 때문에 갓길에 주차하고 수평선과 맞닿은 두장의 파랑 색종이를 바라봤다.
굳이 숨을 쉬지 않아도 콧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마구 밀려든다. 고 마이클 잭슨이 즐겨 이용했다던 산소캡슐에 들어가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아마 모르긴 해도 그보단 낫겠다.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향긋한 갯내음까지 곁들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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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항에서 마주친 변산의 일몰. 가창오리떼가 만든 시커먼 구름을 함께 만났다.

◇변산의 민낯, 내변산
변산반도는 실로 기이한 지형이다. 동고서저의 한반도에서도 서해안에 위치한 까닭에 우락부락한 산세가 없을 듯 하지만,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힘차게 솟은 산들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데 그곳이 바로 변산이다. 워낙 험한 산이 바다와 곡창지대에 면해 있어 이를 노린 산적들도 많았다고 한다. 허균이 부안땅에 살며 ‘홍길동(도적떼)’을 지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고봉(의상봉)은 높이가 509m로 강원권 산에 비하면 낮지만 해안과 인접한 내변산은 생각보다 깊다. 그리고 탐방로가 잘 닦여있어 올라가기도 편하다. 길을 따라 변산 8경 중 주요 지역을 대부분 볼 수 있어 올라가면 곳곳에 풍광이 좋다.(하지만 나는 이날 아이젠이 없다는 핑계로 올라가지 않았다.) 보통은 내변산에서 올라가 직소폭포를 보고 재백이고개를 지나 관음봉 삼거리에서 내소사를 통해 내려온다. 5㎞가 채 되지 않아 3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겨울엔 미끄러우니 좀더 잡아야 낭패가 없다. 딱 직소폭포만 보고 내려오는 1시간 미만 코스도 있으니 등반과 거리를 둔 이라도 도전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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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으면 비로소 고요해지는 바닷물이 여행지에서의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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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히 책을 쌓아올린 듯한 채석강.

부안의 ‘쌩얼(화장하지 않은 민낯)’이라는 내변산은 수많은 암봉과 암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금강산처럼 멋스럽다. 게다가 그 속에는 직소폭포가 얼어붙어 있을게 분명하고, 새하얀 고드름이 거대한 얼음괴물처럼 암벽에 붙어있을 것이다(사실 올라가지 않아서 모른다). 얼음 소리를 쨍쨍 내는 꽤 비밀스러운 산중호수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올라갈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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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의 바닥은 오골오골한 무늬로 뒤덮혀 마치 어느 외계 행성에라도 온듯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의 기경을 품은 변산
아직 이것 만으로는 감히 기이하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채석강과 적벽강을 가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먼저 채석강을 갔다. 시커먼 돌이 시루떡처럼 첩첩 쌓여 있는듯한 모습. 또 어떤이는 1만권의 책이라고 하는데 사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내 책상과도 닮아있다. 아무튼 그 모습이 굉장히 신비스럽다. 외국, 그것도 중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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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 끝쪽에 송송 박힌 해식동굴 안에서 바라본 바다.

광경이다. 여태껏 용암이 굳어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아보니 그게 아니다. 두산 백과사전에는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과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라고 나온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생겨난 절벽이 아주 아름답게 형성됐는데, 옛 사람들은 중국 당대(唐代) 시인 이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붙인 이름이다. 왜 바닷가 절벽에다 채석강(彩石江)을 붙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기경이었기 때문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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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 주차장 반대편으로 가면 밀물 때 밀려드는 물길을 만날 수 있는데 그래서 채석강(江)이라 불렀나 보다.

모든게 일상에서 쉬 볼 수 없을만큼 생경하다. 높은 절벽은 마치 레고로 쌓은 듯 조립식 같고, 오골오골한 무늬가 새겨진 바닥엔 파도가 넘실댄다. 해식동도 있어 그안에 들어가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도 근사하다. 채석강을 거니는 관광객들을 따라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춥다.
채석강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적벽강도 갔다. 마찬가지로 켜켜이 쌓인 높은 절벽(채석강보다 높다)에 붉은 빛이 감돌아 언제가더라도 저녁 무렵같다는 곳인데 역광일 때 가서 썩 그렇다는 느낌은 없었다. 중국 송대 시인 소동파가 배를 띄웠다는 황주의 강에서 이름을 빌려왔단다. 또 중국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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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서해바다에 눈이 내린 겨울풍경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
사실 내려올 때 ‘강설 예보’가 있었다. 부안 등 서해안에 오후 쯤부터 눈이 온다는 것. 가령 예를 들어 내소사 지붕이라든지 채석강 넓적 바위에 눈이 내려와 쌓이면 그럴싸한 설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일기예보는 마치 ‘내비게이션 속 그녀’처럼 계속 이리저리 빙빙 거짓말만 둘러댄다. 오후 5시부터 온다는 눈은 아예 내릴 기미조차 없다. 어둑어둑해지자 서편에 구름이 몰려왔지만 딱 노을 구경만 망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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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다면 이번 겨울에 변산의 은빛바다와 그야말로 진짜 백사장, 그리고 솔섬이 한곳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구름 사이로 고운 해가 내려앉고 있다. 남녘으로부터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다. 과연 스마트폰, 거참 신기하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먹구름의 이동속도가 매우 빠르다. 자세히, 보니 가창오리떼다. 벌떼처럼, 아니 연필깎이통을 엎질렀을 때처럼 새카만 점들이 구름 모양으로 하늘을 누비고 있다. 아마도 먹을 것이 많은 군산으로 가려나 보다. 내가 오전에 짬뽕을 찾아 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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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눈이 내려와 쌓인 바다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PM 9시부터 눈’ 스마트폰은 다시 말을 바꿨다. 저녁을 먹고난 후에도 눈이 빠져라 눈이 오길 기다렸다. 방에 맥주를 사서 들어가 마시며 창문을 바라봤지만 스마트폰이 ‘AM1시 눈’이란 일방적인 문자를 비칠 때까지 검은 하늘은 말끔했다.
이튿날 새벽에 깼을 때. 창밖은 새하얗다. 거짓말처럼 간밤에 눈이 내려 모래사장을 덮어놓았다. 바지를 꿰입고 솔섬으로 달려나갔다. 그 파랗던 물은 은빛으로 빛나고, 솔섬과 모래사장은 하얀 면사포를 쓴 듯 온통 흰색이다. 사실 눈은 한겹만 살짝 덮을 정도로 내렸다. 해가 솟고나면 모두 사라질 눈이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에는 아예 눈이 내린 흔적도 없다. 마음이 바빠졌다. 얼음판을 밟아 미끄러져 넘어지고 하는 새(매우 부끄러운 모습으로), 해는 떠올랐고 나는 변산을 떠나야만 했다.
부안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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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마실길은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됐다.

여행정보
부안에서 최고의 잘곳을 찾자면 단연 대명리조트 변산(www.daemyungresort.com/bs)이다. 격포항 인근 최적의 위치에 자리를 틀고있으며 지상 8층 규모에 콘도 410실과 호텔 94실 등 총 504실을 갖춘 대형 해양 리조트다. 한국관광공사 선정 ‘가장 일몰이 아름다운 명소’로 꼽힐 만큼 빼어난 전망은 물론이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아쿠아월드, 전북에 위치한 리조트 답게 맛있는 식당까지 갖췄다. 교통 역시 두루두루 다니기에 편리하다. 1588-4888. 격포나 모항 등 해수욕장에는 모텔과 펜션, 민박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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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맛좋은 변산 백합요리.

변산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바로 백합과 바지락이다. 계화회관과 군산식당은 이를 이용한 정식으로 유명하다. 식당에는 백합을 찜과 탕, 죽으로 내놓는 백합정식(2~3인)도 있는데 좀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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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 마실길.

●변산 마실길=국립공원을 두루 도는 ‘마실길’이란 다른 곳에선 보기 드문 걷기길이다. 모두 9개 코스가 있으며 경치가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1코스(조개미 패총길 새만금전시관~송포 5㎞)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 송포~성천 6㎞) ▲3코스(적벽강 노을길 성천~격포항 7㎞)▲4코스(해넘이 솔섬길 격포항~솔섬 5㎞ 1시간30분) ▲5코스(모항갯벌 체험길 솔섬~모항갯벌체험장 9㎞),▲6코스(쌍계재 아홉구비길 모항갯벌체험장~왕포 11㎞)▲7코스(곰소 소금밭길 왕포~곰소염전 12㎞)▲8코스(청자골 자연생태길 곰소염전~부안자연생태공원 11㎞)▲해안누리길(새만금방조제~격포항 18㎞) 인터넷 카페에 많은 정보가 있다. 변산반도국립공원 사무소(063)582-7808 탐방시설과(063)584-8186 내소사분소(063)583-2443 격포분소(063)583-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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