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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40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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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40계단.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1 그때도 은행잎 날던 가을이었다. 우동가락처럼 굵은 소나기도 똑같이 내렸다. 장성민(안성기)이 상대 조직의 보스 장두식(송영창)를 살해한 후 유유히 걸어내려오던 긴 계단. 빗소리 이외엔 느리고 구슬픈 노래(Holiday)만이 울려퍼지고 있다. 찢어진 우산 아래 비에 섞인 핏줄기가 흘러내리던 마흔 개의 회색 계단. 바로 부산에 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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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동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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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동궁.
#2 상대조직 보스 김판호(조진웅)와의 관계를 의심받고 최형배(하정우)의 조직원들로부터 린치를 당한 어설픈 반건달 최익현(최민식). 오해를 풀기위해 늦은 밤 중국음식집에서 식사 중인 형배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만신창이 몸으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는 익현을 차갑게 내친다.“대부님, 여뭐 저 개X같은 소리하고 돌아다니지 마시고…”. 형배가 홀로 소줏잔을 기울이며 탕수육을 먹던 그 중국집 동궁(東宮)의 구석자리. 바로 부산 중앙로에 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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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 서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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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 서면시장.
#3 “와, 나 뚜디리 패고 노래부르러 갔나?” 광춘상고에 다니는 짱구(정우)는 여자친구 주희(황정음) 문제로 이웃 학교(정상) 유도부 패거리에 얻어맞은 후, 학교 불량서클 ‘몬스터’ 선배이자 2학년 보스인 뜩이를 우연히 만났다. 천군만마를 얻은 짱구와 몬스터 소속 패거리는 복수를 위해 정상 패거리가 있다는 로렐라이 노래방에 떼로 몰려간다. “아이믄 끄지라(아니면 꺼져라)” 카리스마 넘치는 선배 김정완이 정상 패거리에 일갈한 단호하고도 날서린 한마디. 그곳 서면시장도 아직 부산에 그대로 남아있다. 아! 로렐라이는 없어졌다. <영화 ‘바람’>언제부터인가 부산은 한국영화의 성지처럼 여겨진다. 많은 영화가 부산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히트영화도 부지기수다. 아예 부산(2009년), 부산행(2016년)이란 영화도 있다. “솰아있네”, “고마해라 마이 무웄다 아이가”, “내가 니 시다바리가”, “쳐갈피고 그라믄 안돼” 등 부산 사투리로 된 명대사들이 영화팬들의 머릿속에 선연히 남았다.하늘을 찌를 듯 솟아난 유리 마천루(해운대), 산비탈을 따라 늘어선 낡은 집(감천동), 컨테이너가 즐비한 항만(부산항 컨테이너부두), 등 다양한 색깔을 가진 부산 곳곳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영화 속 낯익은 곳을 찾아보려 부산으로 떠났다. 시공을 초월한 은막 속에서 친숙해진 부산 곳곳이 마치 나고 자란 고향 동네처럼 익숙하다. 보이콧과 태풍 등으로 반쪽이 됐지만 부산국제영화제도 이번 주말(15일)까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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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건물, 좁은 골목이 인상적인 범일동 매축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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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동 매축지 마을.
◇원빈의 고향 매축지 마을

부산데파트과 부산항 컨테이너 부두에선 ‘도둑들(2012년)’이 뛰어다닌다. 범일동 매축지 마을은 원빈에겐 고향처럼 관계가 깊다.윤도준(원빈)이 ‘마더(2009년)’ 김혜자와 둘이 살던 곳이며, 전당포를 하는 ‘아저씨(2010년)’ 태식(원빈)도 이곳에서 ‘오늘만 보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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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축지 마을은 수많은 영화 단골 촬영지다.

팔을 뻗으면 지붕을 만질 수 있을 듯 나지막한 낡은 건물로 가득 채워진 동네. 보통은 산동네에 판자촌이 형성되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기찻길을 옆에 둔 평지에 있다. 번쩍거리는 도심 속에 숨은 낡은 마을의 분위기가 주변과 딴판이다. 원래 부두에서 짐을 싣는 말을 매어놓는 곳이었던 매축지 마을은 지금 수많은 우리 영화 속 주인공이 살아가는 동네이자 많은 사연이 깃든 곳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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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도 지나치기 어려울만큼 좁은 골목.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길이 좁아도 아주 좁다. 시장을 지나면 골목을 따라 매축지 마을을 한바퀴 돌 수 있다. 추억 속 낡은 건물들과 얼굴까지 밖에 오지않는 담벼락, 그리고 어른 한 명도 겨우 지날 수 있는 좁디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아담한 마을. 담벼락엔 방화수로 쓰기위해 물을 채운 페트병이 잔뜩 놓여있다.

이곳 역시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며, 이젠 촬영 섭외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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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담벼락엔 페트병에 방화수를 담아 놓았다.

태식의 전당포 역시 분식점으로 변했다. 돈가스 잘 튀기는 집으로 소문난 ‘스완양분식’이 바로 그곳이다. ‘양(洋)분식’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썩 고급스러운 집은 아니지만 노부부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 맛이 좋다. 스프가 나오고 금세 튀겨내온 돈가스는 바삭한 겉면과 촉촉한 속살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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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축지 마을의 맛집 스완양분식.

낮엔 젊은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는데 이른 저녁이라 동네 사람 밖에 없다. 장보러 온 할머니도 아줌마도 익숙한 솜씨로 돈가스를 쓱쓱 썰어 저녁을 먹는다. 나도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이 안에선 그나마 가장 어리다.

저물어가는 노을 아래로 나서며 이를 쑤셨다(고기를 먹었으므로). 태식이 소미에게 한 말이 들리는 듯 하다. “원래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르는 척 하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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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시절부터 부산의 명소였던 40계단.
◇솰아있네~ 부산 원도심

부산역에서 광복동 쪽으로 가다보면 눈에 아주 익은 곳이 나온다. 도심 한복판이라 이름도 중앙동. 유명한 40계단이 있는 곳이다. 서울 을지로처럼 커다란 대로변으로부터 동광동 인쇄소 골목까지 오르는 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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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등장한 40계단.

40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민들이 상봉장소로 이용했을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지겟꾼 일에 지칠 때면 계단에 앉아 쉬고 짬을 내 끼니를 해결했다. 각각의 층계마다 피난민의 애환이 묻어 있다. 그래서인지 계단 주변에는 당시의 삶을 상징하는 조각작품이 많다.

뻥튀기 장수, 까까머리 학생, 떠돌이 아코디언 악사 등 생생한 브론즈 상을 통해 당시 삶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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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에서 장성민(안성기 분)은 (송영창 분)를 살해한다.

조금 더 젊은 층에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의 도입 부분에서 안성기가 송영창을 살해한 후 유유히 걸어내려오던 계단으로 친숙하다.

마침 이날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든 건장한 사내들은 없었지만 우산을 들고 올라가는 행인에서 기억 속 영화 장면이 겹친다. 맞다. 계단 중간에 이발소도 있었지. 문득 홀리데이(비지스)가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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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먹방 신’으로 통하는 중국집 장면.

길을 건너면 부산 중부경찰서 쪽에 ‘동궁’이란 중국음식점이 있다. ‘삼대천왕’에도 나올 정도로 맛있는 청요릿집인데 사실 그 이전에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등장해 입소문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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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앉아 똑같은 음식을 먹어보는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다. 업무 중이라 술 대신 물을 따라 마시는 장면.

‘먹방의 황제’로 통하는 하정우의 중국집 식사 신이 강렬하게 남은 곳이다. 홀로 소주를 따르고 탕수육과 양장피를 먹고, 소주를 입에 머금고 가글을 하는 장면은 ‘먹방’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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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에는 하정우 자리를 표시해놓았다.

동궁에는 순례객(?)을 위해 하정우가 앉았던 자리에 표시를 해뒀다. 또 영화 속에서 그리도 맛있게 보였던 메뉴들을 묶어서 ‘솰아있네~ 하정우 먹방 세트’로 판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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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스러운 풍의 바삭한 탕수육이 맛나는 부산 동궁.

테이블이 비길 기다렸다가 자리가 나자 낼름 앉았다. 하정우 자리에 앉아보니 괜시리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등받이에 주욱 기대고 젓가락을 쥔 손은 최대한 멀리. 인증샷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 답다.

중국집 건너편은 ‘보스 나이트 클럽’자리였는데 지금은 새 건물이 들어섰다.

부산의 중국집은 다른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부라더는 그냥 딱 이 형님만 믿으면 돼야!” 영화 ‘신세계’에서 조직 실세 정청(황정민)이 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회식 중 술잔을 내미는 장면은 바로 초량 화국반점에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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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바람’에선 서면시장의 결투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서면시장 먹거리 타운 역시 스크린 속 명소다. 영화 ‘바람’에서 광춘상고 불량서클 ‘몬스터’ 패거리들이 어묵을 먹던 곳. 짱구의 복수를 위해 교복차림으로 몰려가던 그곳이 바로 서면시장 입구다.

비록 간판을 정리, 새단장해 예전의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서면 시장 앞에 서면, 로렐라이 노래방 앞에서 85번 버스를 가로막고 기싸움을 벌이던 광상 김정완과 정상 유도부 주장이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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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면시장 먹자 골목.

‘바람’에서 서면과 원도심은 자주 등장한다. 짱구는 필립이와 서면 동보서적 앞에서 놀았고, 짱구 아버지는 보수동에서 헌책방을 하며 딸과 아들 둘을 키웠다.

부산 영화여행은 부산이라는 거대한 스크린 속으로 뛰어든 느낌이다. 덕분에 나는 졸지에 출연배우가 될 수 있었다. 늘 매력을 풍기는 곳이지만 ‘영화’의 테마로도 재미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각종 영화명소=매축지 마을은 좌천역에서 나와 육교를 건너면 나온다. 범일동 스완양분식(아저씨에서 원빈의 전당포)(051)634-2846. 동궁은 하정우 세트(탕수육+양장피+짬뽕국물)를 4만2000원에 판다.(051)465-7474.

●축제=부산광역시와 부산관광공사가 한류 메가이벤트 ‘2016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이하 BOF)을 지난 1일부터 23일까지 열고 있다. 부산의 문화관광 인프라에 최신 한류콘텐츠 및 아시아문화를 더한 융복합 축제다. 아시아와 세계 젊은이들이 만나 K팝, K푸드, K뷰티 등 K컬처를 한 자리에서 함께 즐길 수 있다. 이 기간 부산비엔날레, 부산국제영화제, 광안리불꽃축제도 펼쳐진다. 문의 부산관광공사(www.bt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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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조방낙지.

●맛집=서면 독도는 새우땅은 귀한 도화새우와 꽃새우, 닭새우를 맛볼 수 있는 곳. 늘 싱싱하고 살이 꽉찬 새우를 취급한다. 어획량이 많지 않은 도화새우는 없을 때도 있다.(051)803-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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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일동 매떡.

범일동 매떡은 ‘굉장히’ 매운 떡볶이로 유명한 곳이다. 큰 가래떡에 국내산 고추와 후추로 경악할만큼 매운 맛을 낸다. 튀김과 어묵을 함께 곁들여도 좋다. 혀를 씻어주는 팥빙수는 필수품이다.(051)633-0166. 인근 조방낙지는 칼칼한 양념에 볶은 낙지, 그리고 함께 곁들이는 곱창, 새우 등이 맛있는 곳. 우동 사리를 넣거나 낙지 볶음을 양념 째 밥에 올려 먹으면 꽤 든든하다. 값비싼 곱창을 넣어도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점심식사 코스로 딱이다.(051)555-7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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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독도는새우땅 꽃새우.

●숙박패키지=롯데호텔부산은 다음달 30일까지 일~목요일 중 투숙객을 대상으로 ‘주중 특가 패키지’를 판다. 패키지는 이그제큐티브 객실 1박과 룸서비스 ‘치맥(치킨과 맥주) 세트’ 혹은 ‘피맥(피자와 맥주) 세트’를 포함했다. 가격은 18만원으로 혜택을 더했지만 더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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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부산 룸서비스 피맥 세트. 피자와 함께 클라우드 3캔을 제공한다.

한편, 롯데호텔부산은 모든 투숙객에게 1실당 최대 4인까지 부산 관광 프로그램 ‘엘티이 로드’ 무료 체험을 제공한다. 이동 차량을 제공하고 전담 직원이 동행하며 각 지역에 얽힌 숨은 이야기나 맛집 정보까지 들려준다. 예약 후 이용.(051)8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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