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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포항의 봄” 새로 개통한 호미곶 해안둘레길을 걸으며 봄맞이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
[포항=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포항을 왔다하니 다른 여행기자들이 “아차!”한다. 모두들 봄 흔적을 노획하러 남쪽만 샅샅이 뒤졌는데 뜻밖에 영상 11도의 포항이 지난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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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제철소를 품은 영일만 포항 앞바다의 야경.
봄은 반드시 남쪽에서만 오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서슬퍼런 동해의 추위도 한물 갔다. 포항의 바다는 이미 봄색을 띠고 있다.소매 속으로 파고드는 칼바람도 더이상 없다. 귀가 간질간질. 영일만으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은 온기를 가득 품었다. 곧 영일대 벚꽃길에 꽃비를 내리고 흥해 이팝나무의 밥풀데기를 튁튁 틔워낼 온풍이다. 뭐 계절 해산물로 잔뜩 차린 봄 밥상은 보너스다. 그동안 겨우내 추운 곳에서 덜덜 떨었으니 감사히 보너스를 챙겨넣을 자격을 스스로 부여한다. 냉큼 대게와 물회를 SNS에 올렸다. 그리 부러워할 것 있나. 오면 되지, 금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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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통한 호미곶 해안둘레길.
◇영일만의 봄

이곳은 해를 빨리 만나서 그런지 봄도 일찍 오나보다. 부딪히는 갯바람이 며칠 전 남쪽바다의 것보다 훨씬 온화하다. 바다로 떨어지는 일출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구룡포 동해면 입암리. 이곳에 막 새로 생겼다는 해상둘레길을 보러 갔다.

동해안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호미곶. 도구 해변에서부터 출발해 뾰족한 호미곶을 돌아 장기면까지 가는 그야말로 상징적인 길이다.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새파란 바다를 빙 둘러 돌아나오며 땅과 바다 위를 번갈아 걷는 구조다. 입암리에서 걷기 시작하자면 오른쪽 옆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왼쪽엔 뚝뚝 선 기암괴석. 아래로는 쪽빛 봄바다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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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암리 앞바다에는 물 속 바닥에 화산암이 형성되어 있어 천연 수영장 역할을 한다.

총연장 58.3㎞에 이르는 둘레길이다. 지금은 동해면 입암리 선바우에서 마산리 하선대 앞까지 700m 구간을 ‘몰래’ 개통했는데 이곳을 다녀왔다.

시작부터 절경이다. 선바위(立岩)가 우뚝 선 것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이만한 풍경의 해안 걷기 길은 보기 힘들다. 원래 대부분의 바닷길을 걸으며 망망대해를 바라보게 되어있는데 이곳은 반대다. 구간 구간 바다 위로 난 데크를 걸으면서 해안 절벽과 기암들을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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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해안둘레길은 해안과 데크를 번갈아 걷는다.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호미반도다. 얼마나 기괴한 형상의 바위가 많겠나. 선바위에서 바다로 툭 튀어나온 절벽을 지나다보면, 만약 이 길이 없었다면 존재 여부도 몰랐을 희한한 모양의 바위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하얀색 언덕이 이색적인 힌디기부터 킹콩처럼 생긴 바위도 있다. 선녀가 내려온다는 하선대(이날은 없었다)도 지척이며 수중 섬들도 맑은 물을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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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이 많은 호미곶 해안둘레길.

데크길에서 하선대 쪽 바다를 보니 갈매기들도 ‘걷고’ 있다. 바닥은 화산 지형 특유의 물 속 절벽이라 걸어도 발목도 안 찰 정도로 얕다가 갑자기 깊어지는 천연 수영장이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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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해안둘레길 입구.

압권은 이곳에 아침 저녁으로 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명색이 영일만(迎日灣) 호미곶이라 해돋이는 당연하겠지만,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해가 떨어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몇년 전만해도 여행작가들만 알고 있던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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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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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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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네 똥이냐 내 똥이냐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에는 인근에 볼거리도 참 많다. 호미곶 해맞이 공원도 지척, 구룡포 항도 가깝고 남쪽 운제산 오어사도 있다. 천년고찰 오어사 이름에는 재미난 설화가 깃들어있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내 물고기(吾魚)’ 이야기다.

옛날 원효와 혜공 이 두 법력 높은 스님들이 산세 좋은 운제산(雲梯山) 물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놀았다고 한다. 실컷 물고기를 먹고 배가 불러 앉아있던 와중에 누군가 먼저 말했다. “그런데 살생을 했으니 어쩌지요?” 그러자 다른 스님이 대꾸했습니다. “도로 살려내면 되지요”.

이렇게 뜻하지 않은 신통력 내기를 하게 된 두 고승은 물가에 나란히 앉아 ‘큰 일’을 보며 아까 먹은 물고기를 도로 살려내기로 했다는데. 잠시 후 정말로 물고기들이 살아나 냇물에서 떼지어 몰려 다니는게 아닌가. 물고기를 보며 두 스님은 서로 자기가 살려낸 물고기라고 우겼다고 한다.

바로 그 물가에 지어진 절 이름이 바로 오어사(吾魚寺·내 물고기 절)라고 한다.

포항 시내에서 오천읍 쪽으로 가는 길 물을 끼고 고불고불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운제산이 나온다. 높은 봉 아래 저수지(오어호)가 휘돌아 나가는 물가엔 오어사가 숨겨져있다. 딱 절묘하고 기이한 산세 품안에 싸인 절집은 지금 봄을 맞았다. 불국사의 말사인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한 오랜 절집이다. 신라 4대 조사(원효·혜공·자장·의상)가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보통 절집과는 달리 일주문이 물가 쪽으로 나 있다.

경내에는 고색창연한 대웅전을 비롯한 당우(堂宇)가 여러 채 남아있는데 빛바랜 기둥과 서까래가 아주 멋지다. 이제 곧 목련과 철쭉이 차례로 피어나 오랜 고찰에 색을 덧입힐 태세다.

절 뒷편으로 오르면 자장암이 나온다. 30도 이상 가파른 산길을 이십여 분 올라야하지만 자장암에선 계곡과 주변 산세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현수교(원효교) 너머 깊은 계곡 속엔 원효암이 있다. 물가를 낀 아기자기한 풍경이 좋아 신도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

오래 전 누었던 똥은 지금도 맑은 물 속 물고기가 되어 세월을 거스른 채 유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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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호텔은 지역민들에게 벚꽃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봄.

◇봄꽃 잔치 앞둔 포항

역시 봄의 주인공은 꽃이다. 이달 말이면 곳곳에 벚꽃길이 펼쳐질 예정이다. 몰래 귀띔을 하자면 지곡동 영일대 호텔도 꽃놀이 명소로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명품 호수 및 영일대&청송대 길(일명 ‘리더의 길’)을 갖춰 볼거리와 휴식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영일대는 원래 영빈관이었다. 포항제철소를 지을 당시 외국으로부터 초빙한 기술자를 재우기 위해 이곳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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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 호텔 명품호수 영일지.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아예 이곳에서 살면서 제철소 건설을 지휘했다. 제철소를 제대로 짓지 못하면 그대로 바다에 빠져죽자는 ‘우향우’정신도 영일대에서 태동했다. 이후 호텔로 변신해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 김수환 추기경, 나카소네 일본 전 수상도 이곳에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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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 호텔 리더의 길 대나무 숲.

영일대는 해를 맞는다는 뜻이지만 영춘대(迎春·봄을 맞다)라 불러도 좋을만큼 완연한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영일지 연못과 정원을 돌아나오는 산책로, 언덕에 세워진 탄탄하고 고급스러운 건물에 연륜이 스며있다. 봄이 익으면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빼어난 조경을 완성한다. 영일대 호텔 측은 꽃놀이를 오는 시민을 위해 돗자리를 제공하고 ‘제철’ 식재료로 만든 고급스러운 도시락을 판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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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운하에서 바라본 포스코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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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운하에서 바라본 포스코의 야경.

봄은 동해를 통해 운하를 타고 동빈내강, 형산강으로 올라온다. 40년간 끊긴 강이 봄을 싣고 다시 흐른다. 생명의 물을 다시 흐르게 한 것은 운하다. 언젠가부터 ‘운하’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지만 포항운하는 정말 근사하다. 도시 주택가 아래로 40년간 갖혀있던 죽은 물을 생명의 물로 바꾼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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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운하에서 바라본 포스코의 야경.

썩은 물 위에 콘크리트, 그 위에 있던 집 2000여 채를 이주시키고 포항 앞바다를 형산강 하류와 이었다. 길이 1.3㎞, 폭 15~26m의 포항운하는 지도를, 아니 삶을 바꿨다. 덕분에 송도동 주택가는 섬이 됐지만 활기가 넘쳐난다. 물이 흐르자 도시가 살아났다. 거꾸로 흐르는 ‘거대한 분수’인 청계천보다 낫다. 운하에는 배도 다닌다. 송도해변까지 갈매기와 함께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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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운하에서 바라본 포스코의 야경.

풍광도 좋다. 운하관 위에서 길게 뻗은 물길과 주변으로 펼쳐지는 도시의 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밤낮없이 수증기를 하늘에 뿜어올리며 값진 철을 생산하는 포스코의 위용당당한 야경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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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대게 역시 아직까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입으로 즐기는 봄

포항에 도착하는 순간 허기가 진다. 여기가 어디냐. 생선회 좋기로 전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곳, 이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포항사람과 통영사람은 다른 곳에서 회를 먹지 않는단다. 확실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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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천회식당 무침회.

자칫 비리기 쉬운 등푸른 생선만 파는 횟집 골목도 포항에는 있다. 북부시장 앞에는 무침회와 물회를 전문적으로 파는 집들이 몰렸다. 명천 회 식당에서 무침회를 맛봤다. 청어, 꽁치, 멸치 등 붉은 살에 파란 등을 지닌 생선회를 썰어 채소와 미역 등을 함께 비벼 먹고 물에 말아 먹는다. 비린내는 커녕 고소하고 상큼한 바다 맛이 한가득이다. 초고추장도 굉장하다. 그동안 먹었던 것이 그냥 고추장이라면 정말 이집 장은 ‘초 고추장’이다.

죽도시장을 비롯해 포항의 밥상 위에는 봄철 먹거리가 지천이다. 아직 존재감을 과시하는 우람한 대게, 기하학적 모양을 연출하는 문어 등이 진한 바다 내음으로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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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에 넘쳐나는 해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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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에 넘쳐나는 해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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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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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시장에 넘쳐나는 해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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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 앞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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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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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견된 포항 주상절리. 내륙 최대 선명한 주상절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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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절리대.

죽도시장에서 대게, 모듬 회와 함께 술 한잔 걸치고 죽도동 해물시티로 2차를 갔다. 뭔가 주문했는데 상 위에 바다가 펼쳐진다. 가리비, 석화, 전복, 낙지, 게불, 멍게, 새우가 사이좋게 한 상에 오른다. 거짓말 좀 보태면 아쿠아플라넷 같은 수족관 규모다.

신선하고 푸짐한 해물은 말할 것도 없고 곁들여내는 국물 역시 통이 크다. 시원한 육수와 어묵, 홍합, 콩나물을 커다란 철판 냄비에 끓여준다.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 안주는 술을 누르는(按酒) 것이 아니라 술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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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촌 전복죽. 멍게젓 등 곁들인 찬도 맛있다.

간밤에 많이 마셨대도 걱정없다. 다음날 죽도시장 안 유화초 전복죽에서 전복죽을 먹으면 속이 가라앉는다. 죽이면서 죽인다. 이집 죽은 소문났다. 관광객들이 다녀간 흔적이 가게 안을 빼곡히 채웠다. 넉넉히 넣고 끓여낸 전복죽이 숟가락을 통해 풍부한 영양과 맛을 입안에 고스란히 전한다.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직접 담근 멍게젓과 청어알젓 등 맛깔나는 반찬이 구수한 죽과 퍽 어울린다. 앓던 환자에게 가져다주면 벌떡 일어날 듯한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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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를 건져 쌈 싸먹는 소고기국밥. 궁물촌.

바다 먹거리만 있는게 아니다. 소고기 국밥을 잘하는 집도 있다. 궁물촌은 지역민들로부터 소문난 곳이다. 사골을 푹 고아낸 국물에 무, 콩나물, 대파 등을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색깔은 붉지만 국물이 진해 전혀 맵지 않다. 국밥집인데 배추쌈을 먼저 내준다. 알고보니 먼저 국밥 속 갈비를 건져내 싸먹으란 뜻이다. 건더기에 굉장한 자부심이 배어난다. 고소한 갈비 뿐 아니다. 근육살(스지)도 들었다. 국물이 맛있는 이유를 짐작하겠다.

포항의 봄은 눈을 채우고 배도 가득 채운다. 봄은 유난히 짧아 곧 여름에게 바통을 내주고 떠날테지만 포항 땅에서 만난 올해 새 봄은 이번에 만들어 낸 피하지방처럼 계속 남을 듯하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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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박물관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전시물이 많다.

포항 여행정보

●KTX타고 포항가기=국내 대표적인 산업도시 중 한곳인 포항은 렌터카도 저렴하니 여행할 때 KTX고속열차가 편리하다. 서울역에서 약 2시간 정도면 포항 KTX역에 도착한다. 남쪽을 여행할 때는 경주역도 가깝다. 코레일(www.korail.com). 1544-7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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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춤을 똑같이 추는 안드로이드 로봇. 포항 로봇박물관.

●둘러볼만한 곳=포항에는 포스텍에서 운영하는 로봇박물관이 있다.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안드로이드형 로봇, 물개를 닮은 애완용 로봇 등 가족 단위 여행객이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포항크루즈(www.pohangcruise.com)는 8㎞(약 40분)짜리와 6㎞ 코스(약 30분)가 있다.(054)253-04001. 관광문의 포항시청 관광포털(phtour.ipoh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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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역 벚꽃명소 영일대호텔.

●잘 곳

=포항 지곡단지 영일대호텔(www.yeongildae.co.kr)은 매년 벚꽃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녹지공간(약 1만6500㎡)과 고급스럽고 단아한 시설로 밪꽃 관광객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중식당 천궁과 양식당 춘자 등 맛난 레스토랑도 함께 겸비해 도심 속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한다. (054)221-9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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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 호텔 중식당 천궁은 맛집으로 유명하다.

●각종 맛집 전화번호=무침회 명천회식당(054)253-8585. 소고기국밥 궁물촌(054)273-9777. 유화초전복죽(054)247-8243. 해물모듬 해물시티(054)282-2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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