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
로칸다 몽로의 주방에 선 박찬일 셰프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박찬일 셰프
로칸다 몽로에서 만난 박찬일 셰프.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이우석기자] 이른바 요리가(料理家)의 전성시대다. 주요시간 대 TV 스크린에는 늘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고 설탕, 소금이 빗발친다.

TV방송뿐 아니다. 맛있는 냄새를 가득 품은 책도 서점의 핵심코너를 점령했다. 기어이 딱딱하던 신문 지면에도 요리가들의 글로 넘쳐난다.

먹는 얘기 떠들면 천박하게 치부하던 근엄하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처럼 향긋한 바람이 불어온 것은 과연 언제부터인가.

풍요의 계절, 밥상머리에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인 추석 명절을 앞두고 ‘글쓰는 요리가’ 박찬일(51) 셰프를 만났다. 22일 오후 늦게 그의 공간인 서울 서교동 ‘로칸다 몽로(Locanda 夢露)’에서 만났다.

“요새 바쁘시죠?” 고개를 끄덕였다. 안봐도 알만하다. ‘목’을 비켜난 주택가에 자리한 몽로가 인기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잡은데다 ‘수요미식회’ 등 각종 ‘먹방’과 신문 기고며 개인 출간까지 얼마나 바쁘겠나.

조리복을 갈아입고 저녁 영업을 준비 중인 그에게 명절과 밥,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요리가로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찬일 셰프
로칸다 몽로에서 박찬일 셰프가 최근 불고 있는 요리열풍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먹방 태풍이 상륙한 대한민국

먼저 최근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먹방’ 열풍에 대해 물었다.

박찬일은 “원래 예전부터 조금씩 있던 현상”이라며 “70~80년대부터 ‘맛자랑 멋자랑’ 등 맛집 소개는 방송에 쭉 있었던 아이템이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식재료의 산지와 시내 맛집을 집중 소개하는 맛집탐방(VJ특공대로 대표되는)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10여년 전부터 외국에 셰프들이 직접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방송가에도 저마다 경쟁적으로 ‘먹방’ 프로그램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라며 “다른 예능 프로에 비해 제작비용도 저렴하고 관심도 많고…, 왜 안하겠나”고 했다.

그래도 과열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현실감나는 영상과 사운드 시스템으로 시청각을 자극하는 최근 방송 시스템에서 얼마나 음식을 맛깔나게 보여주냐? 무엇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먹는 것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양한 먹방이 등장하고 있다. 정통 셰프들이 보여주는 파인다이닝은 언젠가는 꼭 맛보고픈 희망사항으로, 백종원(별명 백주부)이 “참 쉽쥬?”하고 구수하게 소개하는 김치찌개는 (집밥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맛대로 방송으로 즐기고 직접 찾아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말이 나온 김에 최근 ‘백주부’에 대해 일고 있는 ‘집밥 논쟁’에 대해서도 슬쩍 물었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집밥’이 실종되는 바람에 그 반작용으로 가게에서 사먹는 밥이 ‘집밥’의 지위를 얻었고 인기를 끌고 있다. 가족이 파괴된 현대 한국사회에서 ‘집밥’이란 어떤 레시피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이 모여서 먹던 밥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의 메뉴를 친구나 연인, 아니면 홀로 먹는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박찬일 셰프
먹거리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도 불량식품 만큼이나 문제라고 지적한 박찬일 셰프.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2015. 9. 22

◇먹거리에 대한 박찬일의 생각

몇년 째 ‘천일염 논란’ 등 먹거리(식품)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로 인한 고민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는데 박찬일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뭔가 근사한 해법을 내놓을 것을 기대했지만, 일반인들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하루 이틀 단위로 내용이 정반대로 바뀌는 식품 안전 정보를 교조적으로(그것도 줏대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지적은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어처구니없는 불량 먹거리에 당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인들은 식품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은 반면 정작 잘 모르고 있다. 그 때문에 우려의 강도도 높고 오래간다”고 말했다.

과거 잘나가던 라면 회사 한곳을 어렵게 만든 ‘우지(牛脂)파동’부터 쓰레기만두 등 뭔가 의심을 살만한 것이 한번 터져나오면 거의 독극물 수준으로 몰아세우고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것. 한마디로 ‘과도한 불안감’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코팅팬을 사용하면 안된다, 혹은 태운 고기를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통계 등을 두고 당장이라도 그 해악성이 건강을 해칠 것으로 굳데 믿는다. 언론과 의료기관 등 미디어·연구기관까지 이에 합세해 ‘선정적’인 건강정보를 퍼뜨린다. 그는 “생각보다 우리나라의 식품은 안전한 수준”이라고 했다.

매일 파스타 등 이탈리아 요리만 먹을 것 같지만 박찬일은 한식을 주로 즐긴다. 또 가끔 라면을 끓여먹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자주 먹는 메뉴일지도 모른다.

그는 “마늘이나 브로콜리 등에 굉장한 항암 치료효과가 있다고 맹신하면 안되듯, 라면이 건강을 앗아가는 정크푸드로 보는 것 역시 기우일 뿐이다”고 했다.

라면은 일주일에 1~2번 정도 먹는데 특별한 레시피는 없다고 했다. 먹기 직전에 식초를 한 숟가락 넣고 가끔 계란프라이를 해서 토핑으로 올리는 정도. 식초는 넣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잡내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찬일 셰프
‘글쓰는 요리가’ 박찬일 셰프는 요리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우선 “환상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대한민국에서 셰프로 산다는 것

“각각의 밥은 그 자체가 문화”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는 인문학에 관심이 깊다. 한창 기자 생활을 하던 중 요리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도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고나서다. 현재 운영하는 ‘몽로’ 역시 에밀졸라의 목로주점(L’Assommoir)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박찬일은 “영화 그랑블루를 보면 해물파스타를 아주 맛있게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며 영화 시네마천국, 대부, 그랑블루 등을 보며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고 바베트의 만찬을 보고난 후 프렌치 코스요리에 대해 이해했다고 했다.

그는 알려진 대로 신문과 방송을 누비며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음식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문학에 잘 버무리고 사회과학으로 양념한 요리를 문자에 담아 식탁 아닌 책상에 다시 차려낸다.

매주 마감을 해야하니 팬을 놓을 때에도 쉬지 못하고 펜을 잡았다.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보며 연구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본업에도 도움이 됐단다.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Cod)’와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는 이미 그의 요리에 반영됐다. 기자도 음식에 꽤 관심이 많다고 하니 ‘조선의 탐식가’를 추천했다.

요리사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 서른을 넘겨 셰프가 된 박찬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물었다.

“월드컵에서 안정환이 골을 넣으면 애들 대부분은 축구선수가 된다하고, 고산·이소연이 우주인이 되면 당장 학교에 미래의 우주인이 넘쳐난다”. 그는 “취업도 어렵고 대기업을 다녀도 뭐 그리 만족스레 보이지 않는데, TV를 봤더니 셰프들이 근사하게 나오니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겠나”며 “(요리사는) 사실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직업이다. 적성이나 재능도 맞아야 한다. 주변에 누가 하고싶다면 고생길이 훤한 것을 알고있으니 말리고 싶다”고 했다.

“환상을 버려야 한다. 워낙 홀대받던 처지에서 최근 그나마 평균 수준으로 격상되었을 뿐”이라며 “최초로 셰프 열풍을 몰고 온 잘생긴 분이 있었다. 하지만 잊혀지고 있다.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부침이 있다. 말이 오너셰프지 여전히 영세하고 하루아침에 건물주에게 쫓겨나는 요리사가 한 둘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죽어도 하겠다면 정말 열심히 해야한다. 머리만 잘 쓰면 되는게 아니다. 기술이니 매일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반복이란 얼마나 지겨운 것인가. 하지만 꾹 참고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요리 유학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선험자로서 국내에서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조리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시칠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주방에 입성했다. 하루종일 재료만 다듬으면서 언어장벽, 체력, 스트레스, 보이지않는 차별 등 녹록치않은 도제 과정을 견뎌야했다.

그는 “관광객으로 놀러오거나 비싼 학비를 내고 공부하러 올 때야 환대하지만, 정작 주방에 들어서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을 지도 모르는데 누가 도와주겠나. 치열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며 “세계적으로 주방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서열을 두고 수직적이다. 그런 시스템에 적응해야 성공적으로 유학을 마칠 수 있다”고 했다.

어둑어둑 저녁이 됐다.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손님들이 몰려오기 전 바삐 주방으로 들어서는 그의 새하얀 조리복이 얼핏 얼룩무늬 군복처럼 느껴졌다. 오늘밤도 여느 저녁처럼 솟구치는 불꽃과 함께 한바탕 전투가 벌어질테다. 몽로에선.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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