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사포판=김용일 기자] 여전히 꿈꾸는 기분이지만 존재 가치가 갈수록 뚜렷하다. 축구 선수로 한달 사이 위상이 달라진 수비수 이기혁(강원FC)은 월드컵 무대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경험하는 게 아닌 증명하며 보완 과제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

지난달 16일 2026 북중미 월드컵에 출전할 태극전사 26명의 명단 발표식 때 깜짝 발탁 주인공이 된 그는 사전 캠프지인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치른 두 차례 평가전(트리니다드토바고·엘살바도르전)을 통해 홍명보 감독의 신임을 얻었다. 기존 플랫한 스리백 형태에 변화를 그린 홍 감독은 본선을 앞두고 강원FC에서 변칙적인 스리백의 중심 구실을 하는 이기혁의 플레이를 유심히 살폈다.

실제 평가전에서 공세 시 포백 형태로 변화를 주는 등 한결 유연해진 스리백을 통해 이기혁의 장기인 빌드업 등을 실험했다.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보완 과제가 따랐지만 합격점을 줄 만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이기혁에게 월드컵 주전 기회가 찾아왔다. 체코전 이틀을 남겨두고 왼쪽 스토퍼 김태현(가시마)이 부상을 입으면서다. 꿈의 무대를 밟는 데 성공한 이기혁은 단기간에 제 능력을 입증한 데 이어 지난 12일 체코전에서 월드컵 데뷔전까지 치르는 겹경사를 누렸다.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90분 풀타임을 뛰며 팀 내 최다인 11차례 리커버리를 기록했고, 패스 성공률도 94%(62회 시도 58회 성공)에 달했다. 한국이 체코에 2-1 역전승하며 2010 남아공 대회 이후 16년 만에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승리를 거두는 데 이바지했다.

19일 멕시코와 2차전(0-1 패)은 살 떨리는 개최국과 경기였으나 대찬 자세로 전반부터 제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후반 5분 악몽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공중볼 처리 과정에서 골키퍼 김승규와 충돌, 루이스 로모에게 선제 결승골을 허용했다. 김승규의 실책이 컸지만 이기혁도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A매치 5경기도 치르지 않은 그로서는 정신적인 충격도 클 만했다.

하지만 멕시코전 이후 이기혁의 상태를 보면 홍 감독이 왜 그를 과감하게 중용하는지 엿볼 수 있다. 지난 20일 회복 훈련 때 그는 평소처럼 밝은 표정으로 임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이기혁이 보기보다 강하다. 전날 상황도 이르게 털고 더 잘하려는 마음가짐이 있더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이날 이기혁을 별도로 불러 수비 위치와 긴 패스 타이밍 등 원포인트 레슨했다. 이기혁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홍 감독의 동작을 살폈다. ‘대수비수’로 진화하는 과정임을 느끼게 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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