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은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어야...
북한은 핵을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정권 생존의 보증수표로 인식
핵물질 생산 중단, 핵탄두 수량 제한, 핵실험 금지, 미사일 발사 제한 등 단계적 군축 논의 검토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북한의 비핵화는 대한민국이 포기할 수 없는 최종 목표다. 핵 없는 북한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동북아 평화, 국제 비확산 체제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목표와 현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국가안보는 희망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해야 하며, 전략은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정부가 직시해야 할 현실은 북한이 단기간 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국가안보의 우선순위는 비핵화 협상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핵 억제와 핵 군축에 두어야 한다.
△비핵화는 멀어지고 핵 위협은 커지고 있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 이후 2017년까지 총 6차례 핵실험을 실시했다. 현재는 핵실험 없이도 핵탄두 소형화와 운용체계 고도화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최소 50기에서 최대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화성-17형과 화성-18형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극초음속 미사일, 전술핵 운용체계 등을 구축하며 핵전력의 실전 배치를 확대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북한의 정책적 입장이다. 북한은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고 핵 보유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핵은 더 이상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체제 생존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조기에 완전한 비핵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북한 지도부는 핵을 단순한 군사력이 아니라 정권 생존의 보증수표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바라보는 국제정치의 교훈은 명확하다. 핵을 포기한 국가가 결국 체제 붕괴나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평가하든 북한 지도부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실제로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과 국제 제재 속에서도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 경제 성장보다 핵무력 강화를 우선했고, 주민 생활보다 전략무기 개발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이는 북한이 핵을 경제적 보상과 교환할 수 있는 협상 자산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 억제의 강화다
현실이 이렇다면 대한민국의 안보정책은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북한이 상당 기간 핵을 보유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핵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
핵 억제의 핵심은 북한이 핵 사용을 결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핵을 사용할 경우 정권과 군사력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 억제의 본질이다.
이를 위해 한미 확장억제 체계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실질적 운영, 전략자산의 정례적 전개,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강화, 킬체인과 대량응징보복 체계의 고도화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도 대한민국을 공격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것이 당장의 안보 과제다.
△비핵화가 어렵다면 핵 군축도 현실적 대안이다
동시에 정부는 비핵화와 핵 보유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완전한 핵 폐기 이전에 핵 군축이라는 현실적 단계를 활용했다. 핵전력을 통제하고 감축하며 위험을 관리하는 접근이었다.
물론 북한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이 당장 모든 핵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핵물질 생산 중단, 핵탄두 수량 제한, 핵실험 금지, 미사일 발사 제한 등 단계적 군축 논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완전한 비핵화만을 협상의 유일한 목표로 설정할 경우 오히려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반면 핵 군축은 북한 핵 능력의 확대를 억제하고 위협 수준을 낮추는 현실적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다.
△목표는 비핵화, 전략은 핵 억제와 핵 군축
국가안보에서 목표와 수단은 구분되어야 한다. 목표는 분명하다. 최종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북한이 이미 상당한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체제 생존의 핵심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비핵화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핵 억제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고, 핵 군축을 통해 위협을 관리하며, 장기적으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는 단계적 접근이다.
비핵화는 목적지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비핵화라는 원칙을 유지하되, 현실적 안보전략의 중심을 핵 억제와 핵 군축에 두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 핵 위협이 현실이 된 시대에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책임 있는 선택일 것이다.

sangbae0302@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