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퇴근한 시청자가 다시 회사로 향하고 있다. 현실의 출근길은 지루한 고역이지만, 드라마 속 회사는 통쾌한 해방구다. 그곳에서는 참았던 말이 시원하게 터져 나오고, 평범한 직장인이 단숨에 판을 뒤집는다.
이준영, 손현주 주연의 JTBC 토일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은 72세 재벌 회장이 20대 인턴의 몸으로 깨어나 회사 내부의 권력 싸움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현실의 신입사원은 조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머물며 결정권은 적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신입사원은 궤를 달리한다. 겉은 20대 인턴이지만 내면에는 대기업 회장의 노련함이 자리 잡고 있어,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흔든다. 시청자는 이를 통해 직장 내 위계가 무너지는 쾌감을 맛본다.
‘신입사원 강회장’의 흥행은 1차원적인 설정의 재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회사 내부의 암투와 권력 승계의 탐욕이라는 익숙한 재벌극 클리셰에 회장의 영혼을 입은 인턴이라는 장치가 더해지며 직장인의 대리 복수극으로 진화했다. 현실에서는 부당한 지시에도 고개를 숙여야 했던 이들이 브라운관 속에서는 판을 읽고 상대를 굴복시킨다. 이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시청자를 붙잡는다.

22일 공개를 앞둔 서인국, 박지현 주연의 tvN 새 월화드라마 ‘내일도 출근!’은 결이 다른 감정을 겨냥한다. 권태로운 일상에 지친 7년 차 직장인이 까칠한 상사와 얽히며 일과 사랑의 감각을 되찾는 오피스 로맨스다. 이번 작품의 중심에는 7년 차 직장인의 짙은 권태가 깔려 있다. 신입의 긴장감은 증발했고 업무는 손에 익었으나 삶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 숱한 직장인이 공감하는 시기다. 퇴사를 꿈꾸지만 선뜻 사표를 던지지 못하고 관성으로 버티는 지독한 피로감 위에 ‘내일도 출근!’은 설렘이라는 로맨스를 처방한다.

26일 방영되는 소지섭의 안방 복귀작 SBS 새 금토드라마 ‘김부장’은 오피스물의 범위를 한층 넓힌다. 평범한 중소저축은행 직원으로 살아가던 아버지가 딸을 되찾기 위해 위험한 사투에 나서는 복수 액션물이다. 주인공은 회사에서는 흔한 부장일지 몰라도, 가족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 숨겨둔 과거의 능력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현실의 김부장은 조직 안에서 묵묵히 버티는 인물이지만, 드라마 속 김부장은 가족을 위해 맞서는 전사로 변모하며 중년 직장인의 서사를 피 끓는 액션물로 치환한다.
세 작품의 장르와 문법은 각기 다르다. ‘신입사원 강회장’은 권력 역전극이고, ‘내일도 출근!’은 피로를 로맨스로 중화하며, ‘김부장’은 중년 가장의 어깨에 액션 판타지를 장착한다. 그럼에도 세 작품이 뿌리내린 공간은 하나같이 회사다. 직장은 한국 시청자에게 가장 밀착된 생활 공간이자, 온갖 애환과 감정이 켜켜이 쌓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오피스물은 신입부터 중년 부장까지 전 세대의 결핍과 욕망을 회사라는 무대 위에 쏟아낸다. 시청자가 퇴근 후에도 다시 회사를 찾는 이유는 현실의 복습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다른 결말을 보기 위해서다. 억눌렸던 목소리와 지워졌던 존재감이 되살아나는 장소. 고단한 현실의 출근길을 버티게 하는 판타지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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