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배우 윤재찬에게 영화 ‘살목지’는 단순한 데뷔작 이상의 의미다.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스크린 데뷔였고, 동시에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던 치열한 도전이었다. 긴 무명과 불안, 수많은 오디션 끝에 얻어낸 결과였기에 그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윤재찬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살목지’ 흥행에 대해 “배우라면 누구나 영화를 꿈꾸지 않나. 제가 꿈꾸던 걸 현실로 이룬 것만으로도 벅찼다”며 “개봉 7~8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고, 지금은 관객 수가 두 배 이상까지 올라가니까 정말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개봉 16일 만에 손익분기점의 두 배에 달하는 누적 관객 수 160만 명을 돌파한 ‘살목지’는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물속의 무언가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공포 영화다.

그동안 공포 영화는 수많은 신예 배우들을 발굴해낸 ‘신예 등용문’으로 불려왔다. 윤재찬에게도 ‘살목지’는 그런 기회의 작품이었다. 당시 윤재찬은 작품 제안을 기다리는 배우가 아니었다. 직접 문을 두드리고, 기회를 찾아다녀야 했다.

윤재찬은 “원래 영화 오디션을 정말 보고 싶었던 시기였다. 다른 작품도 최종까지 갔다가 떨어진 적이 있어서 더 절실했다”며 “그러다 회사에서 ‘살목지’ 오디션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제목을 듣자마자 이상하게 전율이 왔다. 피부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윤재찬은 스스로를 극한의 몰입 상태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공포영화 속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어둠 속에 자신을 가뒀다. 그는 “대본 속 상황이 거의 다 밤이었다. 그래서 저도 그 환경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며 “암막 커튼을 치고 낮에도 불을 안 켰다. 혼자 어두운 거실에서 연습하고, 밤에는 방 불도 꺼놓고 지냈다. ‘귀신이 3초 뒤에 튀어나온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숨을 쉬게 될까’ 같은 걸 계속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오디션 경쟁은 치열했다. 최종 후보에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도 있었다. 윤재찬은 “다들 너무 잘하는 분들이었다. 솔직히 겁도 났다. ‘내가 저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싶었다”며 “그래서 더 미친 듯이 준비했다. 제가 내세울 수 있는 건 결국 간절함과 노력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간절함은 기회를 만들었다. 합격 문자를 받았던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윤재찬은 “문자를 보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내가 드디어 영화를 하는구나.’ 그리고 영화 감독님에게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처음으로 들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진짜 싸움은 촬영 현장에서 시작됐다. 공포영화라고 해서 현장이 늘 음산한 것은 아니었다. 수십 명의 스태프와 장비들 사이에서 공포감을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윤재찬은 “현장에서 오는 공포를 기대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사람이 너무 많았다”며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촬영 전에 일부러 혼자 어두운 곳으로 갔다”고 말했다.

윤재찬은 홀로 촬영장 외곽의 캄캄한 공간으로 홀로 들어가 공포를 끌어올렸다. 그는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곳에 혼자 서 있으면 사람이 이상해진다. 누가 뒤에서 보고 있는 것 같고, 뭔가 튀어나올 것 같고. 30초만 있어도 숨이 막힌다. 그렇게 공포를 몸에 담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몰입은 생각보다 깊었다. 윤재찬은 촬영 기간 내내 악몽과 가위눌림에 시달렸다. 그는 “계속 어둠만 상상하고 살다 보니까 악몽도 꾸고 가위에도 눌렸다”며 “근데 저는 원래 그런 몰입을 좋아하는 편이다. 캐릭터가 느껴야 하는 감정을 실제로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심지어 당시 윤재찬은 현재 방영 중인 SBS 수목드라마 ‘오늘도 매진했습니다’ 촬영까지 병행하고 있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강행군 속 체력은 바닥나고 있었다. 윤재찬은 “서울 갔다가 다시 지방 내려오고, 또 올라오고를 반복했다. 진짜 체력으로 버텼다”며 “근데 오히려 그런 지친 상태가 캐릭터 감정에는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무너질 것 같던 순간마다 주변의 말들은 의외로 큰 힘이 됐다. 특히 함께 작업한 배우 김혜윤의 한마디는 오래 남았다. 윤재찬은 “나중에 혜윤 누나가 대본 리딩 끝나고 집에 가면서 ‘쟤 누구냐, 잘한다’고 했다고 들려줬다. 그 말을 듣는데 자신감이 확 생기더라”며 “후시녹음이 끝난 뒤에도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다. ‘왜 이렇게 잘했냐’고 하더라. 제가 정말 지쳐 있을 때도 ‘걱정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만큼 해라’고 말해주셨는데 그 말이 너무 울컥했다”고 전했다.

첫 스크린 데뷔를 마친 그는 자신의 연기에 75점을 줬다. 이유를 묻자 잠시 고민하던 윤재찬은 “제가 가진 날것의 느낌이나 자연스러운 표현은 어느 정도 잘 담긴 것 같다. 그런데 아직 노련함은 부족하다”며 “나머지 25%는 앞으로 채워가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윤재찬의 시간은 늘 순탄하지 않았다. 잘 풀릴 것 같다가도 무너졌고, 누구보다 절실하게 달려왔지만 결과는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재찬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버티고, 또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서일까. 윤재찬의 얼굴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남아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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