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DB손해보험 오픈 우승

2016년 이후 3598일만의 투어 통산 2승

깊은 슬럼프 이겨낸 값진 ‘우승’

“제네시스 대상이 목표”

[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꿈 같고, 아직도 멍합니다.”

무너졌던 시간은 길었지만, 포기하지 않은 시간은 더 단단했다. 10년을 돌아온 끝에, 이상엽의 한마디는 모든 시간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이상엽(32)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시즌 개막전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자신의 이름을 다시 새겼다.

이상엽은 19일 강원도 춘천의 라비에벨 골프앤리조트 올드코스(파72·7254야드)에서 열린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총상금 10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8개, 보기 2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최종 합계 23언더파 265타를 적어 2위 옥태훈(21언더파 267타)을 2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역대 대회 최소타 신기록이다. 게다가 2016년 이후 무려 3598일, 약 10년 만에 다시 들어 올린 트로피다. KPGA 투어 통산 2승째, 그리고 생애 첫 스트로크 플레이 우승이다.

과정은 더욱 극적이었다. 3라운드까지 선두는 권성열이었다. 이상엽은 2타 뒤진 단독 2위. 그러나 마지막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1번 홀부터 심상치 않았다. 6번 홀까지 이어진 ‘6연속 버디’를 잡았다. 순식간에 리더보드 최상단을 장악했다. 흐름을 잡은 이상엽은 흔들리지 않았다. 8번 홀(파4)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11번과 12번 홀 연속 버디로 다시 격차를 벌렸다.

그러나 우승은 쉽지 않았다. 그가 꼽은 첫 번째 고비는 13번 홀(파4)이었다. 경기 후 방송 인터뷰에서 이상엽은 “13번 홀에서 쓰리 퍼트 보기를 했을 때 위기를 느꼈다”고 돌아봤다.

흐름이 끊길 수 있는 순간, 승부는 15번 홀(파5)에서 사실상 갈렸다. 추격하던 권성열이 무리한 공격 끝에 무너지며 타수를 잃었다. 반면 이상엽은 냉정했다. 안전하게 경기를 운영하며 파 세이브로 리드를 지켜냈다.

그는 “15번 홀이 결정적이었다. 투 온을 준비했지만 다른 선수 샷을 보고 끊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파로 막은 게 다행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18번 홀. 파 퍼트가 홀컵에 떨어지는 순간, 이상엽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긴 터널의 끝에서 마주한 빛이었다. 2016년 첫 우승 이후, 그는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성적은 급락했고, 시드도 잃었다. 퀄리파잉 토너먼트(QT)를 전전해야 했다.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버텼다. 이상엽은 “다시 제대로 첫 우승을 한 기분이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보다 더 깊은 감정도 전했다. 이상엽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힘든 시기 도와주신 분들 모두 감사하다. 그리고 4일 동안 캐디로 함께한 여자친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이제 목표도 바뀌었다. 그는 “원래 올시즌 시드 유지가 목표였는데,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제네시스 대상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번 우승으로 이상엽은 상금 2억원과 제네시스 포인트 1000점을 확보하며 시즌 초반 판도의 중심에 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순간이다. 이상엽의 우승은 단순한 결과가 아닌,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 만든 가장 값진 증명이었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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