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화, 우아함 벗고 독기로 채웠다…카뮈 ‘오해’로 서늘한 귀환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배우 이주화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오해’로 무대에 선다. 오랜 시간 단단한 연기력으로 자기 자리를 지켜온 이주화는 이번 작품에서 기존 이미지와 결이 다른 얼굴을 꺼내든다. 정제된 우아함보다 날것의 불안과 서늘한 독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연극 ‘오해(각색·연출 최원석)’는 오는 4월 30일 대학로 후암스테이지에서 막을 올린다. 카뮈 특유의 부조리와 비극, 인간 존재를 향한 질문이 응축된 이 작품에서 이주화는 극의 중심축인 ‘샛별’ 역을 맡았다.
샛별은 단순한 악인으로 정리되는 인물이 아니다. 가난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투숙객을 죽이는 냉혹한 선택을 반복하지만, 그 안에는 삶의 밑바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공포와 절박함, 그리고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내면의 균열이 함께 놓여 있다. 연민과 불안을 동시에 품은 인물이다. 이번 무대가 더 주목받는 지점이다.
이주화는 샛별을 선악의 단순한 대립으로 밀어붙이기보다, 부서진 인간의 결을 촘촘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처연함에 기대지 않고,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건조한 시선과 눌린 호흡, 서늘하게 깎인 감정선으로 카뮈가 던진 질문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작품 속 “검은 비를 맞고 얼굴이 삭아빠졌다”는 대사는 이번 이주화의 변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배우는 이 문장을 설명하지 않는다. 목소리와 표정, 정적의 길이로 인물의 시간을 드러낸다. 그렇게 관객은 샛별의 말이 아니라, 샛별이 버텨온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데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주화는 무대와 방송을 오가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쌓아왔다. 그러나 이번 ‘오해’는 익숙한 강점의 반복이 아니라, 스스로 구축해온 인상을 기꺼이 허무는 선택에 가깝다. 그래서 이번 무대는 단순한 출연작이 아니라, 배우 이주화의 현재를 다시 확인하는 작업으로 읽힌다.
연출진 역시 이주화의 이번 선택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배우의 오랜 내공 없이는 구현하기 어려운 밀도와 집중력이 이번 ‘샛별’에 담겨 있다고 높이 산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극보다 안쪽에서 스며 나오는 서늘함, 그리고 비극의 구조를 몸으로 이해한 배우만이 낼 수 있는 무게감이 이번 공연의 핵심으로 꼽힌다.
무대는 늘 새로운 얼굴을 기다리지만, 때로는 오래 버틴 배우의 깊이가 가장 낯선 충격파로 다가오기도 한다. 연극 ‘오해’ 속 이주화가 바로 그런 경우다. 화려한 장식 대신 인간 존재의 허무와 균열을 정면으로 껴안은 이번 무대는, 배우 이주화가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
4월의 끝, 대학로 후암스테이지에서 시작되는 ‘오해’는 카뮈의 비극을 다시 무대 위에 세우는 작업이자, 배우 이주화의 새로운 얼굴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주화는 최근, 30년 연기 인생을 바탕으로 한 모노드라마 ‘웨딩드레스(평민사)’를 책으로 출간했다. 이번 책은 배우 혼자 무대를 책임지는 1인극의 전 과정을 ‘배우의 시선’으로 기록한 결과물로, 기획과 대본, 연습, 무대 준비, 공연 직전의 긴장과 첫 공연 이후의 변화까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촘촘하게 담아냈다.
1인극 ‘웨딩드레스’는 이미 무대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2023년 국내 초연을 시작으로 2024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2025년 일본 오사카 공연까지 이어지며 글로벌 무대에서도 호응을 얻었고, 현지에서는 한국적 정서와 보편적 감정이 결합된 강렬한 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대 위에서 검증된 작품이 책으로 다시 확장되며, ‘웨딩드레스’는 한 배우의 치열한 기록이자 한국 모노드라마의 가능성을 해외에까지 연결한 의미 있는 결과물로 부각된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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