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서 전해지는 미치도록 강렬한 아드레날린

인류를 지배한 기계적 자유에서의 해방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20세기 초 전 세계 예술계를 매혹시킨 ‘아르데코의 여왕’ 타마라 드 렘피카. 그는 뮤지컬 ‘렘피카’의 처음과 끝에서 “내가 누군지 아니?”라고 재차 묻는다. 관객들이 그를 몰라서일까? 작품은 렘피카의 버라이어티한 삶을 통해 여성의 주체성과 자유, 동성애와 가족 간의 갈등 등 묵직한 소재들을 촘촘하게 엮었다. 이처럼 그가 원하는 답은 스무고개처럼 무대 위에 숨겨져 있다.

‘렘피카’는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을 겪은 여성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의 예술적 정체성과 자아를 솔직하게 그린다. 그의 치열했던 여정은 꿈과 희망, 사랑과 희생으로 얽혀있다. 영화 같은 삶에서 그가 선택한 붓끝의 강렬함은 빛과 어둠을 오색빛깔 무지개로 물들인다.

지난 21일 한국에 상륙한 ‘렘피카’는 전 세계 최초 라이선스 초연이자 아시아 최초로 공연 중이다.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디바’들이 총출동해 이미 오감 만족으로 소문난 ‘맛집’이다.

독보적 아우라를 빚어내는 ▲‘렘피카’ 역 김선영·박혜나·정선아 ▲‘라파엘라’ 역 차지연·린아·손승연이 서로 예술적 영감의 존재로 활약한다. 두 사람의 세상에서 또 다른 세계관을 형성하는 ▲‘마리네티’ 역 김호영·조형균 ▲‘타데우스’ 역 김우형·김민철 ▲‘수지’ 역 최정원·김혜미가 조력자로 나선다.

◇ 의식적 편견을 부순 행진곡…나뭇가지같이 뻗은 사랑의 갈래

작품은 렘피카의 그림 속 비대칭 자세를 취한 인물들처럼 비형식적 구도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 시대의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지만, 깊이 있는 많은 메시지를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한꺼번에 전달하기란 쉽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라면, 무대와 관객 간 소통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레이첼 채브킨 연출이 렘피카의 그림을 의도적으로 무대에 많이 올리는 이유다. 렘피카의 그림처럼 겉으로는 완벽한 척하는 인간의 아이코닉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캔버스에는 그의 숨겨진 욕망과 상처까지 담고 있다. 이 같은 경험은 앙상블과 장면 연출에서의 각도를 유심히 살펴본다면 색다른 관람 경험을 통해 구매 욕구를 충만 시킨다.

아직도 같은 고민을 했다면 박혜나 배우의 말처럼 “음악이 우릴 이끈다”에 모든 감정을 맡겨도 좋다. 무대의 공기 전환을 맡은 신나는 팝은 이 시대의 EDM 장르와 같이 클럽에서 병맥주 한 병씩 들고있을 것만 같다. 승리를 향해 전진하는 힘찬 행진곡 같은 순간의 두드림이 심장 박동수를 요동치게 만든다. 억압과 편견에 찌든 시대와 맞서는 강한 투쟁의 의지를 함께 담았다.

모든 넘버는 희생에서 따라 다시 시작하는 발돋움이지만, 결국 전쟁터로 내몰린 가여운 여인의 모습이다. 렘피카는 그 순간을 여성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담아 붓으로 정신을 그린다.

◇ 캔버스를 무대로 옮긴 형형색색의 자유

작품의 완성은 ‘선·색·형태’에서 ‘선·면·빛’으로 발전한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강철로 연결된 무대를 오색빛깔 조명으로 물들인다. 길게 연결된 조명선으로 만든 면의 공간을 깃발로 채운다. ‘렘피카’가 말한 예술로서의 저항이다.

‘예술을 다큐멘터리로 받지 말라’라고 얘기한다. ‘렘피카’를 위해 한마디로 들린다.

렘피카의 비현실적인 예술의 혼을 극적으로 내려놓은 작품이다. 차갑게 빛나는 눈과 관능적인 눈꺼풀, 기하학적으로 조각된 몸은 그 시대에 맞서는 강한 투쟁의 의지를 드러낸다. 시대가 만든 철창 없는 감옥과 채어진 족쇄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그대’를 통해 자유를 얻는다.

렘피카의 파멸을 막으려는 내레이터와 같은 마리네티는 그의 그림을 보고 ‘몰락 직전의 달콤한 퇴폐미’라고 비난했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 ‘나’로 남고 싶은 ‘여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각자만의 해방감이 있는데, 렘피카에게는 캔버스와 붓, 물감이 그런 존재였다.

초호화 캐스팅으로 힘을 더해 단단하고 강렬한 ‘다크(Dark) 낭만’, ‘렘피카’는 6월 21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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