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전 4회 ‘깜짝 등판’해 1이닝 무실점 쾌투

최고 구속 시속 148㎞ 건재 과시

노경은 “내 코가 석 자, 후배 조언보다 실력으로 보여줄 것”

마운드의 ‘살아있는 전설’

[스포츠서울 | 도쿄=박연준 기자] “긴장되기보다는 오히려 들떴던 것 같다. ‘이제 됐구나’ 싶은 확신이 들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생애 첫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마운드를 밟은 ‘베테랑’. 노경은(42·SSG)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점에 등장해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어놓은 그의 투구다. 왜 류지현(55) 감독이 그를 대표팀의 ‘믿을 구석’으로 낙점했는지를 증명했다.

그는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본선 1라운드 C조 첫 경기 체코전에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2안타 1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길목에서 상대 중심 타선을 봉쇄하며 11-4 대승의 든든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냈다.

애초 류지현 감독은 체코전 선발 소형준(KT)에 이어 정우주(한화)를 붙이는 ‘+1’ 전략을 예고했었다. 그러나 4회초, 마운드에 오른 이는 예상을 깨고 노경은이었다. 이는 경기 흐름을 읽은 류 감독의 정밀한 ‘타이밍 매치’였다. 상대 4번부터 시작되는 승부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노련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는 이미 모든 상황을 예측했다. 경기 후 만난 그는 “갑자기 나간 것이 아니다. 경기 초반 소형준이 주자를 쌓을 때부터 불펜에서 가장 먼저 몸을 풀며 대기하고 있었다”며 “상대 중심 타선에 맞춰 등판하기로 사전에 약속된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화가 왔을 때 ‘드디어 내가 나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마운드에 올랐다”고 덧붙였다.

WBC라는 거대한 무대의 데뷔전이었지만, 노경은에게 중압감은 사치였다. 그는 “마운드 위에서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리드도 여유가 있었기에 ‘하늘에 맡기자’는 기분으로 편하게 던졌다”며 미소를 지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여전한 구위다. 이날 노경은의 속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8㎞까지 찍혔다. 마흔을 넘긴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구속이다. “구속을 확인하고 나서 ‘이제 준비가 됐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 몸 상태는 최상”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표팀 투수진의 최선참인 그지만, 후배들에게 장황한 잔소리를 늘어놓지는 않는다. 대신 마운드 위에서 실력으로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줄 뿐이다. “내 코가 석 자라 후배에게 조언할 처지는 아니다(웃음).”라고 몸을 낮추면서도 “그저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소 실점으로 막아내겠다는 마음뿐”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12년 만의 1차전 잔혹사를 끊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위기 상황마다 류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올릴 이름, ‘노경은’이라는 이름 석 자가 도쿄돔 마운드에서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지탱하고 있다. duswns06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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