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묘하다. 늘 이중적이다. 겉으로는 느글느글한 비릿내가 흐르는 한편으로 왠지 모르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탐욕으로 가득 찬 중앙정보부 권력자에게서도 기묘한 연약함이 보인다. 서늘한 악인으로 비치는 와중에도 인정받고 싶어 발버둥 치는 나약한 얼굴이 쓱 고개를 내민다.
배우 박용우가 연기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의 황국평도 같은 맥락이다. 1970년대 야만의 시대를 관통하는 권력자에게서 숨겨진 불안과 결핍을 끄집어냈다. 강한 모습 이면에 숨은 연약함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다.
박용우는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인간은 누구나 올곧고 강한 면 이면에 약한 면이 있다. 평소에는 물렁하다가도 어떤 포인트에서 오만하거나 과시하고, 이유 없이 짜증 내며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이는 악함이 아니라 연약함에서 비롯된, 사랑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 생각한다. 황국평도 그런 시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사실 황국평은 박용우에게 특별히 매력적인 역할은 아니었다. 이미 수없이 맡은 엘리트 악역인 데다, 시청자를 압도하는 특별한 장면도 없었다. 자칫 전형적인 주인공의 상사 혹은 기능적인 악역에 머물 수 있었다. 우민호 감독과 뛰어난 후배들이 있었지만,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부족했던 순간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다름 아닌 ‘가발’이었다.

“감독님과 미팅하는데, 황국평이 가발을 쓰는 설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확 마음이 끌렸어요. 이 강한 사람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거잖아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결핍을 가진 남자죠. 그 설정 하나에 확 설레더라고요.”
어느덧 데뷔 30년을 향해가는 베테랑이지만, 박용우는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한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더 섹시하게 보일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감정의 ‘본질’을 파고드는 데 집중한다. 스스로를 ‘본질주의자’라 칭하는 이유다.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것이 배우다. “이 감정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타고 올라가면 결국 사랑과 두려움의 갈림길에 놓인다는 게 박용우의 지론이다.
“세상에 감정은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두려움조차도 사랑의 또 다른 이면이죠. 악행도 어쩌면 결핍을 채우려는 처절한 몸부림일 수 있고요. 그 연약함을 이해하는 게 배우의 숙제인 것 같아요.”
그 역시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제는 불필요한 두려움을 내려놨다고 털어놨다.
“예전엔 연기에 힘이 많이 들어갔어요. ‘달콤, 살벌한 연인’ 때 칭찬을 많이 받았지만, 사실 저는 괴로웠습니다. 보여주기식 연기를 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죠. 지금은 달라요. 포장지를 걷어내고 인간이 가진 날것 그대로의 감정, 그 질감을 표현하려고 해요.”

‘메이드 인 코리아’에선 국내 최고의 배우들이 연기라는 무기로 격돌했다. 그 거대한 에너지 사이에서 박용우는 황국평을 통해 다시 한번 증명했다. 중심을 꽉 잡은 그의 연기가 극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진짜 강함은 겉으로 드러나는 포효가 아니라, 내면의 연약함을 마주할 때 나온다는 것도 증명했다.
“저도 어릴 땐 인기에 집착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연기도 하기 싫어지고, ‘왜 이 직업을 하고 있나’라는 회의감도 깊었죠. 슬럼프가 꽤 길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타인의 시선이나 현실적인 결과보다는, 저 스스로의 만족과 과정의 행복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제가 좋으면 좋은 거예요. 이제 그게 되네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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