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장항준 감독이 사극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단종을 다룬,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 분)의 시간을 담았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장항준 감독은 개봉 소감을 묻자 “이준익 감독님이 ‘항준아, 네가 드디어 엄청난 흥행을 해보는구나!’라고 하시더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준익 감독의 호평 속 출발한 ‘왕사남’은 박지훈, 유해진, 유지태, 전미도, 김민 등 황금 라인업을 자랑한다. 흔히 ‘인복’이라고 부를 법한 캐스팅에 대해 장항준 감독은 단호했다.

“인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근데 누가 모았습니까. 제가 모았죠.(웃음) 같은 시나리오를 열 명의 감독에게 주면 열 가지 캐스팅이 나올 거예요. 저는 인기보다 연기만 봤어요.”

특히 엄흥도 역의 유해진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떠올린 인물이었다. 장항준 감독은 “쓰면서 자꾸 유해진 얼굴이 그려졌다. ‘이 역할은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며 “요즘 말로 하면 국사책을 찢고 나온 얼굴이다. 진짜 한국인 같다. 예전 사진들 보면 다 그런 얼굴이었는데, 요즘 우리가 다 너무 용돼서 그렇다”고 웃음을 보였다.

박지훈 캐스팅 역시 계산된 선택이었다. 그는 “경연 프로그램을 원래 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늘 져왔기 때문”이라면서도 “박지훈의 옛날 사진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 이 아이가 이홍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코미디와 스릴러를 오가며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해온 장항준 감독에게 ‘사극’은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인은 담담하다. 장 감독이 꺼내든 건 특유의 솔직함과 유머, 그리고 실패한 정의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었다.

“계유정난, 세조 이야기는 너무 많이 했잖아요. 드라마틱하고 좋은 작품도 많고요. 그런 걸 제가 다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주목한 건 기록에서 비껴간 시간이었다. “단종의 최후, 그 이후의 삶은 기록이 거의 없다. 그 몇 줄을 가지고 상상해봤다. 실현되지 못한 정의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장 감독은 “돈 벌면 다 끝난 거고, 성공하면 복수한 거라고 말하지 않냐. ‘그러면 도덕은 없어져도 되나?’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져도 되나?’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 작품이 엄흥도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장 감독은 “우리는 늘 영웅의 시선만 보지 않냐. 전 남겨진 사람의 시선이 궁금했다”고 말했다.

다만 개봉 후 호랑이 CG 장면의 퀄리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장항준 감독은 “털 있는 짐승 CG는 한 프레임 렌더링에 16시간씩 걸린다. 물리적으로 다듬을 시간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CG 얘기가 나오는 게 다행이다. ‘연기 못했다’ ‘시나리오 별로다’ ‘역사 왜곡이다’ ‘중국풍이다’ 이런 얘기보다 훨씬 낫다”고 강조했다.

초반 편집과 연출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서는 쿨하게 인정했다. “그랬으면 제가 벌써 천만이었겠죠?(웃음)”

천둥번개 연출에 대해서도 “실제로 폭우가 쏟아졌던 시기”라며 “하늘이 뒤집히는 순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지만, “그걸 계산해 넣을 정도로 제가 거장은 아니”라고 특유의 재치를 뽐냈다.

그렇다면 ‘왕사남’이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바랄까. 장항준 감독은 “‘아, 흥행했다’. 그리고 ‘2026년 한국영화가 살아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며 “같은 배급사인 ‘만약에 우리’가 첫 문을 잘 열었듯, ‘왕사남’이 바통을 이어받고 또 다른 작품들이 그 흐름을 이어가길 바란다. 올해가 반등의 해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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