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최지우 주연의 ‘슈가’는 ‘착한 영화’다. 자극적인 갈등이나 눈물샘을 억지로 쥐어짜는 장치 대신, 한 아이의 삶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선택을 통해 사회가 외면해온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영화는 1형 당뇨병 판정을 받은 어린 아들 동명(고동하 분)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워나가는 엄마 미라(최지우 분)의 이야기다. 미라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들의 병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제도와 규제가 가로막는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아들을 위해 직접 의료기기를 해외에서 구입해 개조하고, 불가능해 보였던 법과 제도의 변화를 하나씩 밀어붙인다. 이 모든 서사는 실제 1형 당뇨병 환자인 아들을 위해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제도 개선을 이끌어낸 김미영 대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의 첫인상은 ‘모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휴먼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슈가’는 이 작품이 감정에 기대어 관객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적 서사 대신, 감독은 1형 당뇨병이라는 질환 자체에 집중한다.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 환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오해와 편견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이러한 접근은 최신춘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학창 시절 1형 당뇨 진단을 받았던 최 감독은 영화 속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냈다. 학교에서, 또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혈당 관리의 압박 속에서 10대 환자들이 어떤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를 영화는 과장 없이 보여준다.

특히 ‘슈가’는 1형 당뇨병이 유전이나 식습관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영화 속 대사인 “교통사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병”이라는 표현을 통해 질병에 씌워진 낙인을 걷어낸다. 이 한 문장은 환자와 가족들이 그동안 감내해왔을 시선과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관객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미라와 동명이의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는 연속혈당측정기가 현재 실제 환우들에게 제공되기까지의 과정을 서사의 일부로 담아내며, 개인의 싸움이 어떻게 사회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라의 고군분투는 곧 수많은 환우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 작품에서 실제 엄마인 최지우의 연기는 더욱 현실감을 더한다. 민진웅은 가족의 또 다른 축으로서 현실적인 온기를 더하고, 아역 배우 고동하는 아픔과 밝음을 동시에 품은 연기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는다.

‘슈가’가 특별한 이유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영화 수익금 일부를 ‘한국1형당뇨병환우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스크린 안에서 던진 메시지를 현실로 연결하려는 선택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빠른 소비가 익숙한 시대에 ‘슈가’는 느리고 조용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필요한 방식으로 전한다. ‘착한 영화’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 이 영화에는 그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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