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위수정 기자] 일본 NHK의 연말 대표 음악 프로그램 ‘홍백가합전’이 2025년을 ‘종전 80주년’이라는 상징적 해로 규정하며 평화와 반전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놓고 보면, 이 같은 기획 의도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NHK는 공식 홈페이지와 일본 현지 보도를 통해 “2025년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지 80년이 되는 해”라며, 방송 개시 100주년과 종전 80주년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시대와 세대, 국경을 넘어 음악으로 연결된다’는 메시지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이 ‘종전’ 서사가 일본 내부의 피해와 평화 담론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전면에 내세우며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해 왔지만, 그 이전에 일본이 저지른 침략과 식민 지배, 전쟁 범죄에 대한 성찰은 상대적으로 흐릿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일본 언론들은 이번 홍백가합전의 사회자와 주요 출연진을 히로시마, 나가사키 출신 인물들로 구성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다루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가해의 역사보다는 ‘희생’의 감정에 무게를 두는 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가수들의 참여는 더욱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2025년 홍백가합전에는 한국 아티스트로 에스파, 앤팀, 아일릿이 출연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K-팝의 글로벌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와 동시에, 일본의 역사 인식 프레임에 한국 가수들이 동원되는 모양새 아니냐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특히 ‘종전 80주년’을 전면에 내건 무대에서 한국 아티스트들이 축제의 일부로 소비될 경우, 일본의 전쟁 책임이 희석되는 데 기여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과거사에 대한 충분한 합의와 성찰 없이 ‘평화’와 ‘화합’만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피해국의 시선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홍백가합전은 일본 사회를 대표하는 국가적 이벤트다. 그렇기에 더더욱 역사 인식에 대한 책임도 무겁다. 종전 80주년을 말하기에 앞서, 일본이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먼저 던져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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