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춘사영화제 사회자로 변신

‘수묵화 드레스’로 의미 전하는 등

성숙한 인성에 관계자들 호평 일색

“내년엔 더 많은 활동, 기대해 주세요!”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배우 박한별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생애 첫 영화 시상식 사회자로 나선 그의 행보는 단순한 복귀를 넘어, 배우로서 단단해진 철학과 재기를 향한 진심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박한별은 23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건설회관에서 열린 제29회 춘사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숨겨뒀던 진행 솜씨를 뽐냈다. 처음에는 부담된다며 고사했지만, 시상식의 의미를 되짚은 뒤 흔쾌히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 ‘첫 나들이’ 화려함 대신 ‘의미’를 입다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장미를 수놓은 드레스를 고른 그는 “의상은 영화제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가에 집중해 선택했다”고 귀띔했다. 생애 첫 ‘영화 시상식 사회자’로 나서는 무대인데도 자신보다 영화제가 가진 의미를 전달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는 의미다.

실제로 박한별이 사회를 맡은 ‘춘사영화제’는 일제강점기 때 영화 아리랑을 연출한 한국 영화의 선각자로 불리는 고(故) 나운규 감독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창설한 시상식이다. 나운규 감독의 호인 ‘춘사(春史)’를 내건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투혼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고로 나운규 감독은 애국계몽운동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 가입 후 독립군이 되는 등 독립운동가로서의 행적도 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영화계에 투신해 배우와 감독으로 활동하며 이른바 ‘조선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영화를 통해 핍박받는 시민을 위로하고, 이야기로 항일 항쟁을 전개해 애국심을 고취하는 등 시대를 앞서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박한별이 화려한 백색 드레스 대신 수묵화를 닮은 드레스를 고른 건, 이 영화제가 가진 의미가 ‘공정성 시비와 상업주의 경향을 극복하고, 제작 현장에 헌신하는 모든 영화인과 관객을 위한 헌사’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무대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은 박한별은 단아하면서도 특유의 밝은 이미지를 잃지 않아 영화제의 품격을 높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감독과 배우들도 매우 반가워했다. 박한별 역시 “너무 뜻깊은 영화제에 사회자로 참가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 영화제 의미를 되짚어보고 누가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감독, 배우님들이 잘했다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 2026년이 기대되는 ‘성장형 블루칩’

2019년 MBC 드라마 ‘슬플 때 사랑한다’ 이후 가족사와 육아 등으로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던 박한별은 6년 만인 올해 예능과 드라마 등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복귀를 둘러싸고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지만, 변함없는 미모와 원숙한 연기로 2026년을 빛낼 블루칩으로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10월 NBS 추석특집 드라마 ‘밭에서 온 그대’를 통해 농익은 연기력을 뽐낸 그는 크랭크업을 마치고 후반 작업이 한창인 영화 ‘카르마’에서는 다큐멘터리 PD이자 기자로 분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실상 화자 역할로 열연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른바 ‘얼짱’ 출신 스타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배우’로 거듭났다”고 입을 모은다. 이날 시상식에서도 ‘박한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는 영화 관계자들의 평가가 줄을 이었다. 박한별은 “내년에는 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팬들을 찾아뵙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배우는 언제나 평가받는 자리다. 대중은 스크린 또는 브라운관에 비친 모습만으로 평가하고, 확대 재생산된 사생활로 재단한다. 박한별 역시 예기치 못한 이슈로 강제 휴식기를 가졌다. 끌려들어간 강제 휴식기는 일과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됐다. 동시에 두 아이의 엄마로 겪은 일상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얼짱 출신 스타’라는 꼬리표를 떼고 자신이 가진 탤런트를 다양한 얼굴로 표현하는 ‘배우’로 거듭난 비결도 혹독한 세풍을 견딘 인내의 결실이다.

가는 줄기 한 가닥으로도 엄혹한 겨울을 견디고 여름의 끝자락에 짙은 향의 하얀 꽃을 피우는 인동초처럼, 박한별도 다시 자신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춘사(春史)의 뜻을 기린 영화제 얼굴로 변신한 건 그 첫걸음일 수도 있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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