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재난영화로서는 충분히 리얼하지만, SF로서는 지나치게 불친절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대홍수’는 두 장르의 경계에서 방향을 잃은 채, ‘모성애’라는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대홍수’는 대홍수가 덮친 지구의 마지막 날,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건 이들이 물에 잠겨가는 아파트 안에서 벌이는 사투를 그린 SF 재난 블록버스터다. 작품은 19일 공개된다.

이야기는 아들 자인(권은성 분)과 함께 살아가는 연구원 안나(김다미 분)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소행성 충돌로 남극 빙하가 녹아내리며 기록적인 폭우가 이어지고, 안나 모자가 살던 아파트 역시 속수무책으로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런 안나 앞에 연구소 인력보안팀 소속 희조(박해수 분)가 나타난다. 그는 이번 대홍수로 인류의 멸망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하며, 인류가 마지막 희망으로 ‘신인류 창조’에 나섰다고 말한다. 모든 준비는 끝났지만, 신인류에게 단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인공지능 개발 연구원인 안나는 그 감정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지목된다. 하지만 구조 조건은 잔혹하다. 아들 자인을 포기한 채, 오직 안나 혼자만 우주선에 탑승해야 한다는 것. 인류의 미래와 한 아이의 생명 사이에서 안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대홍수’는 제목 그대로 ‘재난의 스케일’로 관객을 단번에 압도한다. 특히 초반부는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가 구현할 수 있는 물리적 리얼리티의 최대치에 근접해 있다. 물이 차오르며 공간이 붕괴되고, 익숙한 생활 공간이 순식간에 생존의 전장으로 변하는 과정은 생생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재난물에 SF 장르를 결합한 ‘대홍수’는 중반부에 이르러 급격한 변주를 맞는다. 세계의 멸망과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거대한 담론 아래, 안나의 ‘모성애 실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감정’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모성애’라는 인류의 판단 속에서 동일한 시뮬레이션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무한 루프 전개 속에서 관객은 메시지와 설정, 구조적 장치를 스스로 해석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맥락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결과 영화는 재난물에서 SF로 장르를 확장하려는 야심과 장르적 설득력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다.

이러한 구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장르를 잇는 연결고리다. 그러나 ‘대홍수’는 이를 ‘모성애’라는 비교적 간편한 장치로 메우려 한다. 안나가 아들 자인을 구하기 위해 반복하는 선택과 만삭 임산부의 출산 장면은 모성애를 인류 생존의 핵심이자 서사의 동력으로 강조하지만 정작 그 깊이는 지나치게 얕다.
특히 장르와 서사를 잇는 브릿지가 되어야 할 부분이 ‘모성애’라는 방대한 감정선으로 뭉뚱그려버린다. 이같은 탓에 설득력과 개연성이 떨어지고, ‘모성애’가 지닌 가치도 애매해진다.
결국 ‘대홍수’는 생생한 재난 장면을 구현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을 특정 감정선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재난은 끝까지 버텨냈지만, 이야기는 끝내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한 이유다. sjay0928@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