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실수했다고, 이미 차려진 연회를 취소하고 모든 음식을 치운다면? 셰프의 책임은 따로 물어야겠지만, 준비된 식탁을 엎어버리는 건 감정이 앞선 낭비이지 않을까.
배우 조진웅(본명 조원준·49)이 고교시절 소년범 의혹 보도 이후 스스로 은퇴를 선택했다. 그의 인생과 책임, 반성과 재기는 차분히 논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진웅의 문제를 작품과 동일선상에 두고, 드라마 전체의 방영 여부까지 저울질 하는건 별개의 판단이 필요하다.
‘시그널’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남은 미완의 작품이다. 이재한 형사의 행방, 시간의 브릿지, 뒤집힌 세계의 구조 등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질문이 열린채 남아있다.
팬덤이 7년 넘게 ‘시즌2’를 반복해 외친 이유다.

산업적으로 접근할 지점도 있다.
2020년대 들어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은 한국 장르물을 주요 전선에 배치하고 있다. K콘텐츠는 ‘해외에서 뜬 아시아 드라마’가 아닌 OTT의 핵심 자산이 됐다.
그 관점에서 시그널은 K드라마의 최상위급 콘텐츠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 여러 곳에 수출된 검증된 드라마로 일본과 중국에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그 연장선에서 ‘두번째 시그널’도 한국 드라마IP 확장 모델의 대표사례가 될만한 카드다.
그럼에도 조진웅 논란으로 인해, 이미 촬영을 마친 시즌2를 접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하지만 드라마의 서사는 한 배우가 독점하지 않는다. 각각의 퍼즐이 모인 ‘세계관’으로 굴러간다. ‘두번째 시그널’엔 조진웅과 함께 장기 미제 전담팀 형사 차수현 역의 김혜수, 프로파일러 박해영 역의 이제훈이 그대로 출연한다. 시즌1 대본을 쓴 김은희 작가가 시즌2 대본도 맡았다.
시그널에서 조진웅이 중요 축인 건 분병하지만, 그 혼자만으로 설명되는 작품이 아니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수백명이 협업해 만들어내는 종합 콘텐츠다. 화면에서 조명받는 배우들 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스태프와 관계자가 카메라 뒤에서 작품의 잉태와 탄생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시그널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두번째 시그널’을 방영하지 않고 봉인하자는 건, 이 사람들의 노동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결정이기도 하다. 조진웅이 참여했다는 이유로 거대한 창작물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건 또다른 과잉 처벌에 가깝다. 게다가 조진웅은 이미 은퇴를 이미 선언했다.
현재의 논란은 레스토랑에서 상찬이 차려졌는데 요리사가 실수했다고 연회를 통째로 취소하자는 발상과 유사하다. 음식을 먹을지 말지는 고객의 선택이다. ‘두번째 시그널’을 볼지 말지도 시청자에게 맡겨야 한다.
배우의 삶과 작품의 생명이 연동한다는 시청자는 채널을 돌릴 것이며, 논란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를 보고 싶은 시청자는 화면을 주시할 것이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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