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옹호가 가당키나 한 일일까. 수많은 연예인들이 잘못으로 철퇴를 맞고 방송가에서 떠난 사례를 손에 꼽을 수 없는데, 조진웅에 대해서만 옹호론이 일어나고 있다. 독립운동가나 정의로운 형사 등 상징성이 가진 역할을 맡아 온 것에 대한 역차별로 해석된다.
옹호론의 핵심 논리는 그가 ‘소년범’으로서 죗값을 모두 치렀다는 데 있다. 계도와 갱생을 목적으로 하는 소년법의 취지상, 판결문에 학교명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점을 방패막이로 삼는다. 30년 전 과오를 파헤치는 것이 과연 국민의 알 권리에 부합하느냐는 비판도 이어진다. 결국 비난의 화살을 범죄를 저지른 배우가 아닌, 뒤늦게 판결문을 공개한 언론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언론 역시 선정적인 보도를 한 측면이 있긴 하나, 이는 차후의 이야기다. 과연 조진웅은 옹호의 대상인지 따져 봐야 한다. 조진웅 외에도 수많은 연예인이 학교폭력과 미투로 인해 대중의 곁을 떠났다. 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의혹만으로 활동이 중단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들은 포용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조진웅을 옹호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조진웅의 퇴출을 강조하는 측의 입장은 “개과천선하고 올바르게 살지 말라”는 게 아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미지를 전파한다는 특징이 있다. TV나 영화를 통해 얼굴이 드러나게 돼 있다. 굳이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이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무리 법적인 처분이 마무리됐다고 해서, 사회적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배우라는 직업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 직접 드러내지 않았을 뿐 조진웅의 피해자는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피해자 중심으로 사안을 바라보면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사죄할 기회는 많았다. 수 년전 언론이 같은 사안으로 소속사에 의혹제기를 했을 때 조진웅은 현재의 이 상황을 예견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지은 죄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버티고 숨기다가 터진 셈이다. 작품을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한 상황에서 죄를 고할 수도 있었다. 국가에서 요구하는 상징적인 역할도 마다할 수 있었다.
팬들을 기만했고, 업계를 무시했다. 자세한 설명없이 회피하듯 은퇴를 선언한 점 역시 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게 여겨진다. 사건이 알려진 뒤 조진웅이 반성과 참회를 한 적은 없다. 결국 ‘조진웅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건 애꿎게 그를 믿은 ‘시그널2’ 제작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촬영장에 일찍 도착해 주위를 잘 챙겼다”는 미담이나, 무능한 대법관도 자리를 유지하는데 왜 연예인만 엄격하냐는 식의 감정적인 옹호론이 고개를 든다. 소년사법의 원칙을 앞세워 개과천선한 배우를 포용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흐리는 주장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조진웅은 중범죄를 저지른 소년원 출신이자, 음주운전 전력이 있고 성인이 돼서도 폭행을 저지른 바 있는 인물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여러 동료 배우 및 스태프에게 손찌검한 정황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개과천선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는 지점이다. 이런 배우를 옹호하는 건, 그 어떤 명분으로도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관용과 포용이 필요한 사회다. 지나치게 혐오적인 태도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공정과 형평도 필수적이다. 누군가는 조진웅보다 덜한 죄를 짓고도 연예계에 발도 못 붙이고 있다. 조진웅을 향한 옹호론조차 특혜고 역차별이다. 굳이 배우를 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죗값을 덜어내려는 이상한 욕망, 오히려 더 참을 수가 없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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