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정의로운 형사의 실체가 벗겨졌다. 죄질이 깊은 소년범이었다. 약 30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게 신기할 정도로 무서운 범죄자였다. 배우 조진웅의 과거사는 참담한 배신감에 가깝다.
이번 사태가 유독 대중의 공분을 사는 이유는 그가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쌓아 올린 이미지와 실제 삶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조진웅은 그간 우직한 형사, 충직한 장수, 조직폭력배라고 하더라도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는 사내로 등장했다. 주로 ‘정의’와 맞닿아 있는 배역을 도맡아 왔다. 대중은 그의 호탕한 웃음과 신뢰감 넘치는 눈빛을 믿었다. 조진웅의 얼굴에 담긴 정의는 팍팍한 현실을 위로하는 힘이었다.
최근에는 그 이미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조진웅은 대통령이 참석한 광복 80주년 경축식에 깜짝 등장해 우렁찬 목소리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며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했다.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시 국민특사로 동행한 것을 계기로 낭독문을 읽게 됐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조진웅에 대한 제보가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그런 그가 소년범이었다는 사실에 대중은 놀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과천선하고 살아간 인간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옹호도 나오지만, 대다수 대중은 이 모든 것이 ‘소년범’임을 감추기 위한 가면극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무명 시절을 견디고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자리에 올랐지만, 성공의 빛이 밝을수록 과거의 그림자는 더 짙고 길게 드리워졌다. 조진웅의 추락은 “과거는 결코 덮여지지 않는다”는 연예계의 냉혹한 진리로 부메랑처럼 날아왔다.
문제는 tvN ‘시그널2’다. 내년 최대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제훈, 김혜수와 함께 삼각편대를 이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제사건을 다루는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적인 배우는 조진웅이다. 과거에서 문제 해결을 도맡는 이재한(조진웅 분) 형사의 이야기로 감동이 파생됐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얼굴이 흙탕물을 튀긴 셈이다.
약 300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드라마 측 입장에선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김은희 작가의 명성을 드높인 작품인 데다, 다시 한 번 세 배우가 뭉쳤다는 점에서 호재가 많았다. 드라마 시장마저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시그널’ 시리즈마저 대중의 외면을 받는다면, 엔터테인먼트산업 전반적으로 불황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시그널2’ 제작진은 추이를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촬영을 모두 마친 상황에서 조진웅의 분량을 뺄 수도 없다. 정면승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행히 조진웅이 은퇴 선언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 나올 잡음은 죄없는 제작진의 몫이 됐다. 뛰어난 배우의 페르소나가 깨졌을 때 그 파편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그 파괴적인 영향력을 수 없이 봐 왔다. 이번 사건이 일으킨 굉음을 미뤄봤을 때, 결코 가볍게 지나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시그널2’가 기대 이상으로 더 잘 나왔다는 소문이 있다. 드라마 업계가 힘든 상황에서 조진웅 사건은 충격적인 날벼락”이라며 “대중이 느낄 충격을 감안해서, 정리정돈을 잘 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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