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너랑 같은 회사 다니는 거 쪽팔려.”

스위트 홈쇼핑이라는 대기업 경력직에 채용됐다는 조나정(김희선 분)의 말에 남편의 답이다. 집에서 애나 키우거나, 다른 직장을 다니지, 왜 자기와 같은 회사를 다니려고 하느냐는 핀잔이다. 남몰래 오피스 와이프를 두고 있어 본뜻은 아니었겠지만, 남편 노원빈(윤박 분)의 말이 지나치게 매몰찬 것도 사실이다. 아무런 능력도 보여줄 수 없는 조나정은 꾹꾹 참을 뿐이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도 모멸을 겪는다. 아이디어를 눈앞에서 훔쳐 가는 수모를 겪은 것도 모자라 회사 고위 임원들과 어렵게 마련한 회식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것에 “이럴 거면 회사는 뭐 하러 다녀”라는 지적도 들었다. 조나정도 그렇게 회식을 떠나고 싶겠냐마는, 아픈 아이가 울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냉혹한 경쟁사회가 모성애를 다 알아줄 필요는 없지만, 차가운 현실인 건 틀림없다.

TV조선 월화드라마 ‘다음 생은 없으니까’ 스토리 줄기다. 유망한 쇼호스트였지만, 출산 이후 몰아친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력을 단절하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던 조나정이 다시 뛰어난 능력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할 정도로 직장 생활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 있다.

놀라운 건 김희선의 변화다. 세기말부터 2000년대까지 국내 최고의 스타로 군림한 김희선은 완벽히 아줌마로 변모했다. 애들한테 시달리면서 끌려다니는 건 물론, 매사 주눅 들어 있는 얼굴 또한 자연스럽다. 예전부터 불편했던 친구로부터 자존심 상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죄책감이 들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나 생일날마저 술 먹고 늦게 들어와 육아를 감당하게 하는 남편에게 서운해하는 모습도 현실감이 살아있다. 친구들에게 수더분하게 남편 욕을 하는 모습조차도 색다른 포인트가 있다.

드라마나 예능에서나 활기차고 유쾌했던 김희선의 본모습이 남아있으면서, 전업주부의 낮아진 자존감도 담아냈다. 고단한 환경 안에서 능력을 분출하지 못하는 40대 여성의 한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따라서 경력이 단절돼 자존심이 상한 경험이 있는 시청자라면 조나정에게 쉽게 이입하게 된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중받지 못할 대상이 아닌데, 눈앞에 보이는 대로 무시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환멸이 느껴진다. 현실은 이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을 거다. 그렇기에 조나정이 당차게 엄혹한 세상을 깨부수기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4회 만에 김희선은 조나정의 얼굴로 시청자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았다.

이제 예열은 끝났다. 고구마가 퍽퍽할수록 사이다는 더 청량한 법이다. 4회까지 조나정이 겪은 수모는 앞으로 펼쳐질 통쾌한 반격을 위한 도움닫기였다. 조나정은 무능한 아줌마가 아닌 ‘에이스 경력직’이다. 위기의 순간에 얻은 기회를 완벽히 메운 덕에 서브 쇼호스트의 역할을 따냈다. 무시만 당하던 40대 경단녀의 회심의 반격, 이제부터 시작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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