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일의 서사, 박지환로 ‘시대의 민낯’을 완성하다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천성일 작가가 ‘추노’에서 조선의 신분제를 처절하게 파고들었다면, 신작 ‘탁류’에서는 조선의 심장부였던 ‘마포나루’를 무대로 그 시대의 경제 시스템과 사회의 맨얼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드라마는 화려한 궁궐이나 고고한 선비의 이야기가 아닌, 탁한 강물처럼 역동적이고 비정했던 하층민, 특히 ‘왈패’의 삶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이는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조선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은 사회사(社會史)에 가깝다.

◇ 박지환의 얼굴, 왈패 서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다

이러한 ‘탁류’의 왈패 서사에 압도적인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단연 배우 박지환의 존재감이다. 그가 연기하는 왈패 두목 무덕은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복합적인 인간상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박지환의 얼굴에는 마포나루의 거친 강바람과 팍팍한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는 단순히 위압적인 두목이 아니다. 초반에는 얻어터지기까지 한다. 곧 꼬꾸라질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회가 거듭되면서 성장을 한다. 부하들을 이끄는 리더십과 비정한 현실 감각,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료를 챙기는 인간미를 눈빛과 표정 모두 살아있다. 그래서 설득이 된다.

왈패라는 존재가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시대의 모순이 낳은 생존형 인물임을 단박에 이해시킨다. 비정한 폭력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 약육강식의 세계를 지배하면서도 그 안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듯한 그의 입체적인 연기는 ‘탁류’의 리얼리즘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다. 박지환이 연기하는 무덕은 ‘탁류’가 말하고자 하는 조선의 민낯 그 자체다. 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게 된다.

◇ 마포나루의 지배자, ‘왈패’라는 이름의 기업

박지환의 연기로 살아 숨 쉬는 왈패들은 마포나루라는 거대한 물류 허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하나의 기업이자 비공식적인 권력 기구다. 전국의 세곡과 물산이 모여드는 이곳에서 왈패는 노동력을 통제하고, 상권을 관리하며, 때로는 분쟁을 해결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는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회색지대에서 탄생한 필연적인 존재였다. 주인공 장시율(로운 분)이 이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시청자들은 조선 후기,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던 시기 국가 시스템의 공백을 사적 권력이 어떻게 파고들고 장악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 조선 경제의 축소판, 탁한 물길의 법칙

마포나루는 ‘탁류’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 자체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이곳은 돈과 욕망이 들끓는 가장 원초적인 현장이다. 왈패들의 이권 다툼은 곧 조선의 상업 경제를 지배하던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를 보여준다. 양반 관료들이 공허한 명분과 이념을 논하는 동안, 마포나루에서는 오직 돈과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이는 유교적 이념으로 포장된 조선 사회의 이면에 얼마나 치열하고 비정한 생존 경쟁이 있었는지를 폭로한다.

결국 ‘탁류’의 왈패 서사는 조선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왈패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쓰레기’ 취급을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시대의 모순이 집약된 존재였다. 그들의 폭력과 탐욕은 양반 기득권층의 위선과 부패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탁류’는 천성일 작가의 날카로운 필력과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열연, 특히 시대를 온몸으로 증명해내는 박지환과 같은 배우의 힘으로 완성된다. 이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통해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의 시선이 박지환의 숨결을 만나 생명력을 얻었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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