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이승록 기자] 권은비는 음악적으로도 유능한 아티스트다. 2021년 솔로로 데뷔한 이후 쌓아온 커리어가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노출 중심의 전략이 그간 구축해온 아티스트로서의 존재감을 스스로 희석시키고 있다.
권은비는 6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워터밤 서울 2025’에 출연해, 몸매가 드러나는 파격적인 의상과 강도 높은 퍼포먼스를 펼쳐 화제에 올랐다. SNS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권은비의 ‘워터밤’ 영상이 빠르게 확산됐고, ‘워터밤 여신’이라는 수식어도 다시 따라붙었다. 다만, 이슈의 중심에 ‘권은비의 음악’은 없었다.
권은비에게 ‘워터밤’은 연예계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2023년 ‘워터밤’ 첫 출연 당시에도 과감한 의상과 무대를 통해 화제성과 인지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후 각종 광고, 방송, 행사가 줄을 이었고, 다양한 무대에 설 기회도 얻었다. 그 당시에도 대중의 관심은 권은비의 음악보다는 비주얼에 집중돼 있었다.

그럼에도 권은비는 솔로 여성 아티스트의 길을 향해 꼿꼿이 전진했다. ‘글리치(Glitch)’ ‘언더워터(Underwater)’를 비롯해 ‘워터밤’ 이후 발표한 ‘더 플래시(The Flash)’까지, 일련의 곡들은 권은비의 음악적 정체성을 대변했다.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구성, 후렴에서 폭발하는 감정선이 권은비가 솔로 작품으로 보여준 특징이었다. 순식간에 솟구치는 특유의 창법은 그의 음악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올해 발표한 ‘헬로 스트레인저(Hello Stranger)’는 전작 ‘사보타지(Sabotage)’의 과잉을 걷어내고 본연의 색으로 돌아온 작품이기도 했다.
이처럼 권은비는 정체성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한 명의 아티스트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숨은 노력과 의지는 그의 작업물 곳곳에 스며 있다. 걸그룹 출신 중에 솔로 가수로 안착하는 사례가 드문 현실에서, 권은비의 행보는 K팝의 확장 가능성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사례이기도 했다.

이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워터밤’에서 비주얼 중심의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미 2023년 첫 출연을 통해 대중에게 음악보다 시각적 요소가 우선 소비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했던 권은비다. 실제로 이번 공연 이후에도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에 대한 반응은 드물다. 권은비의 퍼포먼스가 이슈에 올랐으나, 퍼포먼스는 외모가 아닌 음악과 맞물릴 때에야 비로소 깊이를 갖는다.
지금은 권은비에게 단기적 주목보다 장기적 성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워터밤 여신’이라는 수식어만으로 권은비가 쌓아온 음악적 성취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다. 노출은 빠르게 퍼지지만,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음악이다. 권은비 역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rok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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