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글·사진 | 남해=원성윤 기자] 남해는 척박한 땅이었다. 조선 숙종 때 문신 서포 김만중이 유배를 온 곳이 바로 남해 노도였다. 위리안치(圍籬安置·가시나무 울타리로 집에 가두는 형벌)를 당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섬에 갇힌 김만중은 장희빈을 감싸는 숙종을 나무라며 ‘사씨남정기’를 뚝딱 만들어냈다. 적막한 섬에서 횃불 같은 소설을 피워 올릴 수 있었던 건 오롯이 남해의 힘이었다.

‘쏠비치 남해’는 남해 최남단 미조면에 자리를 잡았다. 위도상 노도보다 더 남쪽이다. 서울시청을 기준으로 391㎞에 달한다. 그만큼 서울에서 멀다. 동시에 여행 만족도는 배가 될 수 있다. “오기를 잘했다”며 먼 길을 달려온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며 도시의 열기를 식힐 수 있는 휴양지로 이만한 곳이 없다.

객실 문을 열면 커튼이 ‘촥’하고 자동으로 열린다. 마치 ‘웰컴’이라 말하며 손짓하는 듯하다. 캐리어를 던져두고 베란다에 몸을 기댄다. 눈앞에 펼쳐지는 남해 바다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약400년 전 유배지가 휴양지로 탈바꿈한 순간이다.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 포지타노(Positano)에 버금가는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소노인터내셔널의 포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포지타노는 남해 다랭이마을 논에 비견된다. 가파른 벼랑 위에 하나씩 집을 지은 포지타노처럼 계단식 다랭이 논을 본떠 ‘쏠비치 남해’가 만들어졌다. 선조들이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고 돌을 쌓아 만든 논을 건축으로 형상화했다. 돌출된 전면부는 빌라(85실)로, 우뚝 솟은 객실은 호텔(366실)로 꾸렸다. 독채로 된 빌라가 로비까지 연결이 돼 있다. 다른 리조트의 빌라처럼 카트 이동 없이 도보로 식음료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곳곳에 스며든 아이디어에 무릎을 친다.

지역을 품으려는 노력은 음식에도 고스란히 반영했다. 남해의 특산물을 이용한 전복리조또, 민어솥밥, 마늘을 곁들인 큐브 스테이크, 오징어 먹물을 곁들인 양파링, 남해유자 에매랄드 비치 등 기지가 돋보이는 요리와 음료가 눈과 입을 즐겁게 만든다.

이재천 총괄쉐프는 “남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식재료의 선도(鮮度)가 매우 뛰어나다. 서울보다 이곳에서 좀 더 과감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조식 뷔페 또한 깔끔하다. 쌀국수, 전복죽을 비롯해 남해 밭에서 난 신선한 과일, 샐러드 등을 비치해 가족 여행객들의 입맛을 고루 만족시킬 수 있게 했다.

압권은 ‘인피니트 풀’이다. 싱가포르를 굽어보는 마리나 베이 샌즈의 인피니트 풀이 핫스팟으로 떠오른 것처럼, 쏠비치 남해 풀 역시 히트를 예감케 했다. 정면에 보이는 모도를 비롯해 좌우에 있는 사도, 율도, 애도 등 오밀조밀한 갖은 섬들이 깊은 원근감을 준다. 섬 정취를 보고 있노라면 김만중의 ‘구운몽’에서 성진이 연화봉에서 내려다보던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아이스비치’ 또한 소노의 야심작이다. 사계절 내내 운영되는 실내 링크다. 비법이 있다. 얼음 대신 고밀도 폴리에틸렌 소재의 특수 플라스틱을 바닥에 깔았다. 이곳에서 공연을 한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최다빈은 “실제 빙상장의 느낌을 80%에 가깝게 만들었다. 얼음으로 인한 마찰이 없다. 일반인이 이용하기에 더 좋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착공에서 개장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마친 건 국내 최대 규모 리조트 체인을 가진 소노의 비결 덕분이다. 김덕원 총괄임원은 “1990년도 강원 고성에 대명 설악 콘도를 선보인 뒤 전국 1만 2000여 개 객실을 운영 중인 곳으로 성장했다”며 “양양, 삼척, 진도에 이은 네 번째 쏠비치를 남해에 꾸렸다. 프리미엄 호텔의 고급스러움과 리조트의 편안함을 갖췄다. 오시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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